<워싱턴에서>대통령의 機密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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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에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이란 것이 있다.30년전 제정된 이 법은 연방정부의 내부자료에 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인정한 법이다.법에 따라 정부 모든 부처에 정보공개법 이행부서가 설치되고 미국민은 물론외국인들도 절차에 따라 필요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주한 미대사관과 국무부간에 교신된 비밀전문을 지난 봄 부분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법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워싱턴에서는 백악관의 국가안보위원회(NSC) 내부자료가 이 법의 적용대상인가를 둘러싸고 해묵은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내용인즉 워싱턴소재 국가안보연구센터(CNSS)가 89년 국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이 부당하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내려졌고,이 판결에 불응하는 원고측은 상고제기와 함께 의회안에서의 논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NSC가 자의로 기밀자료를 파기하려는 기도를 법적 조치로 차단하려는 원고측의 끈질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공개법도 일부 국가기밀자료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삭제한 후 공개하는 것을 허용하고 공개시점도 조정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다.그러나 원칙적으로 최고통치권자도 기밀자료를 자의로 파기해서는 안된다는 문제제기다.
89년 CNSS측이 국가안보자료보관소 (National Security Archive)와 공동으로 이란 콘트라사건 관련 전자우편을 포함한 NSC의 모든 자료를 백악관이 임의로 파기하지 못하도록 법원명령을 요구함으로써 비롯된 논란은 또 한차례 풍파를 일으킬 모양이다.최근 고등법원의 판결은 NSC가 연방기구가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기구며 상원인준없이 대통령이 고위관리들을 임명하고 이들의 임무 또한 대통령의 뜻에 따라 규정되므로 연방기구에 관할권이 미치는 정보공개법의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94년 3월까지 정보공개법에 따라 일반이 요청한 자료를 공개해 왔던 백악관측은 법원에 재심사를 요청했으며,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클린턴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민감한 자료들을 일반에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얻게 된 셈이다.그 러나 원고측의반론과 의회안에서의 논란은 분명 백악관의 자의적 행동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전직대통령의 치부를 밝혀내는 오랜 법정논쟁이 청와대 공문서에 의존하지 못하고 주로 관련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 관행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미국식 정책 투명성의 한 예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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