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3. 8년을 준비한 중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중국은 8년 동안 경기장 시설과 경기력 향상에 집중투자, 대성공을 거뒀다.

 베이징은 1993년 몬테카를로 IOC 총회에서 호주 시드니에게 2표 차로 져 2000년 올림픽 개최권을 놓쳤다. 베이징은 1, 2, 3차 투표까지 1위를 차지했는데 최종 결선투표에서 영연방 국가 표가 모두 시드니로 가는 바람에 밀렸다. 당시 중국은 ‘더 넓게 개방된 중국(more open China)‘을 내걸고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결선투표 전날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베이징이 승리하면 IOC 위원 전원을 베이징으로 초청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사마란치가 놀라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다.

단 2표 차로 졌기 때문에 2004년 올림픽 유치에는 상당히 자신 있었음에도 베이징은 2004년 유치 신청을 하지 않았다. 8년간 더 발전하고, 더 개방하고, 더 정치력을 갖추고 기다리면서 표 다지기를 한 것이다. 중국 IOC 위원이나 중국올림픽위원회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모스크바 총회 때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까지 모스크바로 와서 사마란치 위원장을 만났다. 그때 나는 ‘이런 모습이 중국이구나’란 것을 배웠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평소에 하는 명언이 있다. “운동경기와 선거는 끝나봐야 안다”는 것과 “경기장에서 심판이 판정한 걸 나중에 사무실에서 다시 뒤집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혜는 무턱대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세금을 낭비하면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같다. 그 결과 중국은 스포츠로 세계를 제패하고 거대강국으로 비상하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 인권 탄압을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개막식에는 부시·사르코지·푸틴 등 국가원수 80명이 참석했다. 420억 달러를 투자해 최신 경기장을 지었고, 인상적인 준비·관리 능력을 과시했다. 걱정했던 대기 오염도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중국은 또 금메달 51개를 따 미국(36개)·러시아(23개)를 앞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를 중국으로 끌어들여 보여줌으로써 취약한 정치구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고, 어두운 구석도 알려지게 됐다. 그것은 중국으로서는 부담이지만 세계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베이징 올림픽에는 우리나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개회식에 참석하고 정상외교를 했다. 서울 올림픽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올림픽을 참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대통령은 한국 선수단을 격려했고,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했다. 나는 핸드볼 경기장에서 이 대통령을 영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서울 올림픽 당시 대한수영연맹 회장 겸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이었다.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생각했다.

올림픽 개최를 꿈꾸고 있던 덴마크는 중국의 엄청난 물량 공세와 준비에 기가 죽었는지 올림픽 유치 포기 의사를 밝혔고,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런던은 베이징 올림픽 폐회식 날부터 압력을 느끼게 됐다.

김운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