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기업, 아직도 노조와 나눠먹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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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감사원이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 노사의 나눠먹기를 적발하고 사장 해임을 한전에 요구했다. 지난해 5월 임명된 사장은 노조가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급여가지급금 명목으로 50억여원을 지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직원들이 중증 질환에 대비한 단체보험 3개를 추가로 가입하도록 하는 데 5억여원의 예산을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기업의 이런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힘센 노조가 경영진의 약점을 잡고 흔들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경영진은 자리 보전을 위해 이를 들어주는 식의 타협에 멍드는 것은 역시 국민뿐이다. 결국 공기업의 부실이나 적자를 국민의 돈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민간기업이라면 사장이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수십억원의 예산을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집행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장은 전문성은 있으나 '낙하산 인사'로 몰려 노조에 끌려다녀야 했다. 그러니 전문성도 없는 상태에서 권력의 줄을 타고 임명된 '진짜 낙하산'들의 경우는 노조의 '노리개'일 수밖에 없다.

공기업은 연간 100조원이 넘는 국민의 혈세를 예산으로 쓰면서 중추 기간산업을 떠맡고 있다. 권력을 이용한 낙하산 인사관행은 시대착오다. 그런데 한전만 하더라도 6개 자회사 가운데 4곳의 감사를 정치권 출신이 맡고 있다.

낙하산이라도 유능하다면 별개의 문제다. 문제는 무능한 사람이 권력을 업고 들어와 노조와 타협해 공기업 자체를 망치는 데 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낙하산을 타고 진입한 공기업의 무능한 경영진을 물갈이하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불법이나 부실한 경영으로 기업에 해를 끼쳤을 경우는 끝까지 책임을 지워야 한다.

총선 이후 낙선자들을 배려하는 공기업 인사가 없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 그런 시대를 졸업할 때가 됐다. 투명성과 효율성, 일의 성과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공기업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공기업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다. 그 돈은 바로 국민의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