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환 기자의 5박6일 평양방문기4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 자동차 핸들이 도대체 어느 쪽에



평화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는 경승용차 '휘파람'을 평양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휘파람'차의 운전사석은 왼쪽에 있다.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북한 자동차에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을까요, 왼쪽에 있을까요. 정답은 '둘 다 맞다'입니다.

자동차의 도로 주행은 우리와 같이 우측 통행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운전석은 왼쪽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어떤 차는 왼쪽에, 어떤 차는 오른쪽에 버젓이 있는 게 아닙니까.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수입한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에서 들여온 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독일 등에서 들여온 차는 왼쪽에 있는 그대로 쓰는 겁니다. 운전수들이 헷갈릴 것도 같은데 그래도 잘 다닙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왼쪽으로 통일될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바로 남쪽의 평화자동차가 생산한 '휘파람'입니다. 1300cc 짜리 소형 승용차인데 상당히 깜찍하게 생겼습니다. 북한 정부는 앞으로 수입차를 금지하고 모든 관용차는 휘파람으로 대체하기로 했답니다.

통일교가 운영하는 평화자동차는 밴형 자동차인 '뻐꾸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자동차 이름이 참 재미있죠? 휘파람, 뻐꾸기. 다음은 어떤 이름일까요.

9. 이런 화법도 있구나



만수대창작사의 종합전시관 모습.


만경대 창작사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북한의 최고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공훈 예술가나 인.민 예술가들은 개인 작업실에서 국가를 위한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에는 없는 특이한 화법을 몇 가지 봤습니다. 먼저 금니화(金離畵)입니다. 전체 화폭에 먼저 금박을 입힌 후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털어 내는 화법입니다. 공훈 예술가인 황병호 씨가 개발했다고 하는군요.


만수대창작사의 최경민(55) 창작국장과 금니화를 개발한 인민예술가 황병호씨(오른쪽)



몰골화도 있습니다. 동양화인데 묵을 번지게 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화법입니다. 인민 예술가인 정창모(72) 씨의 화법입니다. 정씨는 전주에서 태어난 남쪽 출신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남쪽에도 왔었다고 합니다. 한겨레 신문사에서 '정창모 작품전'도 열었다고 하는군요.


남쪽에도 잘 알려진 인민예술가 정창모 씨가 '몰골화'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석화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밑그림을 그린 후 천연보석 가루를 색깔별로 뿌려서 그리는 것입니다. '돌가루'인 만큼 절대 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느낌은 뭐랄까. 마치 파스텔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제주도 민족통일축전에 이런 작품들이 다 전시된다고 하니까 직접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10. 북한도 편심에 운다



10월 1일 고려호텔 3층 연회장에서 있은 만찬. 남북의 제주도 축전 조직위원들과 취재진은 10월 23일 제주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명색이 스포츠 기자인데 북한의 스포츠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우리가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미국에서 여자월드컵 축구대회가 벌어졌습니다. 한국과 북한이 모두 출전했죠.

본선에 첫 진출한 한국은 8강 진출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세계 정상급 수준인 북한은 최소한 4강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별 예선에서 스웨덴(북한에서는 스웨이레라고 부르더군요)에 0-1로 졌습니다. 그 결과를 놓고 북한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전금진 조평통 부위원장마저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를 꺼내더군요. "명백한 편심입니다." -아, 그 놈의 편파 판정 문제는 북한이라고 다를 바 없었습니다. "북한 선수가 스웨덴 골문지역에서 넘어지자 주심이 페널티킥 선언했는데 부심이 아니라고 하자 번복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편심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미국의 농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북한은 미국과 같은 조에 편성돼 28일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로 돼 있었습니다. 즉, 미국이 북한을 떨어뜨리기 위해 장난을 쳤다는 말이죠. 제가 그 경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코멘트할 입장은 아닙니다.

미국과의 경기 결과가 무척 궁금했는데 신문이고 방송이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졌구나'하고 생각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까 역시 0-3으로 져서 8강 진출에 실패했더군요.

축구에 관련한 이야기 하나 더. 저녁에 TV를 키니까 북한 남자팀과 이라크의 경기를 녹화중계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북한이 2-0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에서는 '구석차기'로 부른다고 알고 있는 코너킥을 그대로 '코너킥'이라고 말하더군요.



개선문 옆에 있는 '김일성경기장'. 해방직후 평양공설운동장 자리에 10만명 수용규모로 지어졌다.


평양에는 경기장과 체육관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서울의 잠실종합운동장처럼 각종 경기장이 모여있는 곳이 청춘거리입니다. 스포츠 콤플렉스죠. 1992년 지어진 태권도 전당도 이곳에 있습니다.



청춘거리에 있는 태권도전당 전경.


시내 한 복판에도 이번에 개관한 정주영 체육관을 비롯해 평양 체육관과 빙상장이 있고, 개선문 옆에는 '김일성운동장'이 있습니다. 김일성 종합운동장은 해방 전 평양 공설운동장이었는데 이곳에서 경평 축구도 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1945년 김일성 주석이 이곳에서 연설을 한 이후 이름도 바꾸고 좌석도 3만여석에서 10만석으로 늘렸다고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