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의 선택 ‘죽어가는’ 리먼 대신 ‘좀 나은’ 메릴린치 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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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치의 존 테인 CEO(左)가 1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BOA의 켄 루이스 CEO의 발표를 듣고 있다. BOA는 500억 달러에 메릴린치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뉴욕 AP=연합뉴스]

‘광란의 날(frantic day)’.

뉴욕 타임스는 15일(현지시간) 월가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던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경영난에 빠져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가 이렇게 갑자기 간판을 날려버릴 것으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월가의 광풍은 지난 주말 불어닥쳤다.

◆48시간 만에 상황 끝=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메릴린치 인수 결정은 매수자를 찾지 못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준비하는 와중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월가에선 “리먼브러더스의 다음 타자는 메릴린치”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만큼 사정이 안 좋았다는 얘기다.

인수자인 BOA는 12일까지만 해도 리먼 인수를 추진했다. BOA는 한국의 산업은행, 영국의 바클레이즈 등과 함께 리먼의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꼽혔다. 하지만 BOA는 14일 돌연 메릴린치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불과 48시간 동안 협상을 벌인 끝에 인수를 결정했다. 미국 재무부가 리먼의 잠재 부실에 대한 보증이나 공적 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하자 메릴린치 인수로 돌아선 것이다.

WSJ는 미국 금융계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금융당국이 이번 매각을 조율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죽어가는 리먼을 놔두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환자를 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BOA의 메릴린치 인수를 당국이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티머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 등 금융 당국자들은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메릴린치에 회사를 매각할 것을 적극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2일 밤 뉴욕 연방은행은 긴급회의를 열고 리먼의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여기엔 헨리 폴슨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스너 총재,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존 맥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디몬 CEO, 골드먼삭스의 로이드 블랭크베인 CEO 등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리먼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 정부가 금융업계 차원의 공동 대응 방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리먼은 구제 못 받아=지난해 봄부터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거액의 부실을 떠안게 된 리먼브러더스는 그동안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아왔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경영권을 유지한 채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한국의 산업은행도 리먼의 구애 대상자였다. 그러나 잠재 부실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아 협상은 지지부진해졌다. 산은이 먼저 협상을 중단한 데 이어 14일 BOA와 바클레이즈도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특히 그동안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바클레이즈가 14일 오후 협상장에서 돌연 철수한 것이 리먼엔 결정타였다.

바클레이즈는 리먼 인수 후 발생할 잠재적 부실에 대해 미국 정부의 보증을 요구했으나 미국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폴슨 재무장관은 개별 금융사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에 반대해왔다. 최근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 방안 발표 이후 쏟아졌던 비난을 의식해 더 이상 민간 금융사의 부실을 메워주는 데 세금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윤호 기자

◆뱅크오브아메리카=1904년 이탈리아계 이민인 아마데오 잔니니가 캘리포니아주 에 세운 ‘뱅크오브이탈리아’가 모태다. 30년 뱅크오브아메리카로 이름을 바꿨다. 신용카드 등 소비자금융 부문에 강점을 가진 미국의 대형 상업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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