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전 FRB 의장 “100년 만에 한 번 올 사건 … 다른 큰 은행도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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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14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앞으로 더 많은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월가를 덮친 금융위기의 쓰나미에 대형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158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는 파산을 신청했고, 메릴린치는 목숨 부지를 위해 헐값에 팔려가는 처지가 됐다. 당장 ‘피의 일요일’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월가의 부도 도미노가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현재의 위기는 100년 만에 한 번 올 수 있는 사건”이라며 “위기가 해결되기 전까지 더 많은 대형 은행이 문을 닫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위기=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서 비롯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부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상황이 악화될지 가늠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주택뿐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과 우량 등급의 모기지 채권도 흔들리고 있다. 근본 원인은 미국 주택시장의 침체에 있다.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만든 채권(모기지증권)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들 채권을 다수 보유한 투자은행들은 매분기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고 있다. 그때마다 주가는 폭락했고, 신용등급은 떨어졌다.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면서 부족해진 자본을 채워 넣을 길도 막혔다. 리먼의 파산 신청은 3분기에 40억 달러 가까운 손실을 보았다는 발표 이후 나왔다. 살아남기 위해, 매수자를 찾기 위해 한국의 산업은행을 비롯해 영국 바클레이즈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잇따라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전 세계 투자은행이 5000억 달러가량의 자산을 손실로 처리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손실액을 1조 달러까지 추정하고 있다”며 “결국 미국 신용위기는 이제 절반가량을 지난 셈”이라고 말했다. ◆다음 차례는=리먼의 위기는 월가 대형 금융사들을 ‘생존 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장 리먼의 다음 타자로 거론되던 메릴린치는 초고속 협상을 통해 BOA에 회사를 팔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FRB에 400억 달러의 자금 조달을 요청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AIG는 그동안 월가에 나돌던 살생부 1~3 순위에 오르내리던 금융사다.
현재 위기가 단순한 유동성 위기를 넘어 ‘투자은행(IB)’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들은 전 세계에서 자금을 조달해 이를 불린 뒤 수익성 높은 자산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왔다. 하지만 신용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경기 침체로 투자은행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던 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올해 전 세계 인수합병(M&A) 시장 규모는 전년에 비해 27% 줄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혹독한 합병의 시기가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신감이 팽배해지면서 다른 대형 투자은행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기 시작했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위기가) 모건스탠리나 골드먼삭스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긴박한 미국 정부=미국 정부와 월가는 후폭풍 차단을 위해 공조에 나섰다. FRB는 유동성 공급 창구를 열어젖혔다. 올 3월 베어스턴스 파산 이후 도입한 프라이머리 딜러 대출(PDCF)을 채권뿐 아니라 주식을 담보로도 시행하기로 했다. JP모건체이스 등 세계 굴지의 10개 은행도 이날 긴급 유동성 조달을 위해 700억 달러의 금융시장 안정화 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이들 은행은 각각 70억 달러씩 내 펀드를 만든 뒤 누구든 자금이 필요하면 전체 기금의 3분의 1까지 빌릴 수 있도록 했다. 펀드에 참가한 은행은 JP모건체이스, 메릴린치, BOA, 바클레이즈, 씨티그룹, 크레디스위스, 도이체방크, 골드먼삭스, 모건스탠리, UBS 등이다. 이들은 다른 은행들의 추가 참여도 허용키로 해 앞으로 전체 기금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이 같은 조치가 유동성을 완화하고, 시장을 원활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조민근 기자▶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청와대가 막판에 막았다▶ '생사기로' 美 AIG마저 무너지면 최악 상황▶ 파산보호신청 리먼 직원들 '카오스상태'▶ 네티즌 "리먼 샀으면 IMF시즌2"▶ 남은 '빅2' 골드만·모건스탠리 운명은[마르퀴즈후즈후] 앨런 그린스펀 前 FRB 의장 프로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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