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자극한다고 ‘급변 대책’ 필요 없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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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선 이런 사태가 멀지 않은 시기에 닥쳐올 수 있으므로 대비책 마련에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측에선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려 한다. 한·미의 군사계획인 ‘작전계획 5029’도 중국의 반발이 우려되므로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89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이 먼저 통일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북한 급변 사태도 이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는 ‘동독 급변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충격을 줄 것이다. 핵무기와 ‘총폭탄’ 주민을 갖고 있으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진 국가의 질서가 무너지니 말이다. 특히 한국엔 ‘가공할 쓰나미’가 닥칠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북한을 자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니 기가 막힌 것이다. 한국의 생존 여부는 제쳐두고 ‘남북 대화’를 위해 손을 빨고 있으라는 얘기인가.

중국의 반발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급변 사태 발생 시 한국은 독자적으로 개입할 힘이 없다. 미국은 단독으로라도 개입할 태세가 돼 있다. 2005년 미 7함대 사령관은 “북한 안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들어가 질서 회복을 도울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조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한·미 간 완벽한 공조를 토대로 양국이 중국과 대화를 모색하면서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작전계획 5029’는 이런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한·미가 함께 움직이면 중국이 반발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에는 한·미 균열의 노림수가 있는 것이다.

북한이 곧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 북한과의 화해 기조도 강조돼야 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미래에 손을 놓아선 결코 안 된다. 유사시가 오면 준비된 카드를 주머니에서 꺼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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