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급변사태 대책의 핵심은 외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계기로 정부가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한다. 급변 사태 발생 시 북한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지난 정부의 관련 매뉴얼을 통일 국면까지 염두에 두는 방향으로 대폭 손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대책의 핵심은 외교다. 동맹국과의 확고한 공조와 주변국의 지지와 협조 없이 북한 급변 사태에 대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 체제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한 외교의 1차적 대상은 당연히 미국과 중국이다. 미·중은 한반도 정전 체제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지각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도, 받을 수도 있는 나라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나라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미·중 간 컨센서스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반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조율을 통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미국과 공동으로 중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러시아·일본 등 주변국의 협조와 유엔의 지지 확보도 필요하다.

최고지도층의 변고에 따른 북한 체제의 동요는 매우 복잡한 군사·외교적 난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국제법적 논란도 불가피할 것이다.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치밀한 대책을 세우는 한편 국제법적 논리 개발과 역사적 사례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최대 역점을 두면서 민족적 염원인 통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관련국들의 이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북한 급변 사태에 따른 한반도의 질서 재편이 주변국의 이익과 안정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음을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독의 급변 사태가 독일 통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서독의 외교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외교 역량에 따라 북한 급변 사태는 민족적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지략과 용기를 갖춘 최고의 전략가들이 한국 외교 최대의 도전에 맞설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