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한·미 동맹 개념 재정립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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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금 한·미 동맹 관계는 2003년 중반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하다. 당시 수만 명의 시위대가 서울 길거리에서 반미 시위에 나서고 미 국방장관이 시위가 계속될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암시적 언급을 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이 많은 사람이 주장했던 것처럼 그렇게 위기에 처한 적은 없다. 다만 동맹의 바탕에 깔린 전략적 논리가 변함없이 튼튼한지는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이런 생각은 아시아 전문가가 아닌 미국의 고위급 전략가들이 미국과 일본·호주 간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가끔 한국을 빠뜨리는 경우를 보면서 더욱 강해진다. 대다수 인사들은 한·미 동맹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적 발언에서 자주 한국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저명한 냉전 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미·일 동맹을 ‘근본적 냉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은 일본과 단단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2차 세계대전 개전 때부터 깨달았다는 것이다. 반면 한·미 동맹은 ‘전술의 냉전’이라고 묘사했다. 세계 공산주의와 맞서는 최전선에서 위기가 한창일 때 만들어진 동맹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두 동맹의 태생적 성격 차이는 지금도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구상에 미묘하지만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 이제 한·미 동맹의 개념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정립돼야 한다.

우선 한국이 ‘전술의 냉전’ 개념을 넘어 미국에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확실히 북한의 위협은 한·미 동맹이 동북아의 평화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전술적 측면뿐 아니라 근본적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며, 공통의 가치와 가족적 유대관계로 묶인 국가다.

한·미 동맹은 전술적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다. 한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아시아와 국제사회를 연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아시아 미래 안보와 관련된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이 통제되지 않는 패권을 장악하는 것과, 이 지역이 대륙과 해양 세력이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블록으로 나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호하긴 하지만 이 같은 위험을 인식하고 ‘균형자’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노 행정부는 스스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좀 더 중립적으로 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면서 균형자란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한·미 동맹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갖게 할 뿐 아니라 중국에는 독자적 운신으로 한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아시아의 안정적 질서 유지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은 중국이 한·미 동맹을 역내 질서의 불변 요소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체제 경쟁에서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이행의 역사적 경험과 아시아 전 지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가진 한국은 아시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향한 지속적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는 합의를 강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국제적 핵 확산 문제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이 핵 협상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결의를 굳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는 새 시대에 걸맞은 한·미 동맹의 새로운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