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페일린 등장으로 '진흙탕 싸움'…'립스틱 돼지' '초딩' 등 인신공격 포화

중앙일보

입력

미 대선의 양상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지면서 미 선거판이 인신공격적 비판과 비하 발언으로 얼룩지고 있다.

인신공격적 공방전의 포문을 연 것은 최근 페일린 열풍으로 다급해진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

문제의 발언은 오바마 후보가 9일 버지니아주의 레바논 유세에서 매케인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답습, '제2의 부시'가 되려 한다는 비판 도중 나왔다.

그는 "존 매케인은 변화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건 변화가 아니라 단지 같은 것을 다르게 부르는 것과 같다"며 "돼지에게도 립스틱을 바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돼지는 돼지"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또 "상한 생선을 변화라는 종이로 포장한다고 해서 악취를 없앨 순 없다"고도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공화당은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을 겨냥한 '여성비하적 발언'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페일린 선거본부는 대변인을 통해 "오바마의 발언은 점잖지 못하며, 페일린 주지사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단 공화당 뿐 아니라 정치 신인으로 비교적 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을 삼가해 '신사적'이라는 평을 들었던 오바마의 이 같은 말은 여성 유권자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줬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당시 유세장에 오바마가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한 당혹감이 흘렀다고 보도했으며 인터넷 사이트에도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과 여성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이었느냐" "오바마는 자기 아내와 딸들도 돼지 취급을 하는가"라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이 같이 파장이 확장되자 당초 '페일린을 겨냥한 게 아니다'며 한발짝 물러서는 데 그쳤던 오바마는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오바마는 10일 버지니아주 노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나는 돼지와 페일린을 비교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한 뒤 공화당이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자신의 발언을 잡고 비열한 선거 전략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그들(매케인 진영)은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도록 한 정치판 게임을 반복하고 있다"며 '립스틱 발언'은 "매케인의 경제 정책에 대한 것이었으며 매케인 진영이 이를 '가짜로' 왜곡해 '잘못된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립스틱 바른 돼지'는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느냐"의 미국식 표현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히 쓰이는 관용어.

실제로 오바마의 발언을 비난하는 매케인 역시 지난 10월 디모인 연설에서 민주당의 경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건강보험 관련 정책에 대해 이같이 비난한 바 있다. 그는 이어 뉴햄프셔 연설에서도 이를 반복해서 사용했었다.

한편, 립스틱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매케인과 페일린은 이날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행한 선거유세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는 '무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유세의 개막식 연사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비난은 사나웠다.

유세에 앞서 개막식 연설을 맡은 '리네트 롱'이란 지지자는 "여자 아이들을 조롱하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나 할 짓"이라며 "5학년이 미국을 이끌도록 놔 둘수는 없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로저스 매케인 대변인 역시 오바마의 발언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있을 법한 유치한 모욕"이라며 오바마를 유치한 인물로 치부했다.

또한 매케인 진영은 10일부터 오바마의 '립스틱 발언'을 비난하는 내용의, '국가를 이끌 준비가 돼 있나? 아니요. 비방할 준비가 돼 있나? 예'라는 제목의 인터넷 광고에 나섰다.

한편, 이 같은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에 대해 선거 전문가들은 '필요악'이라는 분석이다.

유권자들은 평소 상호비방이나 인신공격 등 선거판 행태에 염증을 느낀다고들 말하지만, 종국에는 이 같은 전략이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이오와 웨벌리에 위치한 와트버그 대학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페니 피어 교수는 미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유권자들의 '이중성'이 깨끗하고 점잖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하면서도 표심을 끌어들여야 하는 후보들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적대적 발언은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유인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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