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한국역사 배움의 요람 만주 땅에 만들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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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승후 교장이 도서실 내 빈 서가를 가리키고 있다. [다롄=장세정 특파원]

“중국에 사는 한국 학생들이 한글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책을 좀 보내주세요.”

중국 다롄(大連) 한국국제학교의 유승후(50·사진) 교장은 요즘 학교 도서실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고구려의 혼이 서려 있는 만주 땅에 세워진 유일한 한국 학교이지만, 도서관 장서가 부족해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 교장은 “학부모회가 자발적으로 상당한 양의 책을 기증했지만 초·중·고 과정 학생 305명과 한글학교 학생 100여 명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고등학생 학습 교재와 교양 도서가 크게 부족하다”며 “헌책이라도 상관 없으니 보내만 주면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다롄 한국국제학교는 현지의 뜻 있는 교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학교다. 2003년 7월 이사회가 발족했으며, 그해 12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첫 신입생을 받은 게 이듬해 3월이다. 그동안 임대건물을 이용하다 이달초 현재의 신축건물로 옮겼다. 새 건물을 세우는 과정은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어려움이 많았다는 게 교민들의 전언이다.

최용수 당시 다롄한국인회 회장(현 다롄국제학교 이사장)과 이시헌 한국인회 사무국장(현 다롄한국인회 회장) 등은 “내친김에 반듯한 자체 건물을 지어 제대로 된 교육 환경을 만들어 보자”고 결의하고 재원 확보에 나섰다. 포스코 차이나를 비롯한 기업들도 지원했고 한국 정부도 도왔다.

교민 사회가 힘을 모은 끝에 지난해 다롄의 신도시에 해당하는 개발구의 1만8445㎡ 부지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최용수 재단 이사장은 “지금은 주변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 부지는 허허벌판 한복판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다롄한국국제학교는 공정이 80%가량 진행된 상태에서 이달초 신축 교사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예산 부족으로 공사를 다 마치지 못하고 입주했지만 4년 6개월의 임대건물 생활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학교 측은 전학 상담이 많아 조만간 학생이 5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축 교사는 현대적 시설을 두루 갖췄다. 학부모들이 직접 참가해 안전한 급식도 제공한다. 하드웨어는 잘 갖춰졌지만 문제는 마음의 양식을 쌓을 독서 여건이 아직도 열악하다는 점이다.

유승후 교장은 “다롄국제학교는 재학생의 학습 공간 역할은 물론 지역 교민들이 만나고 정보를 얻는 공간 노릇도 함께해야 하겠지만 현재의 장서(약 6000권) 수준으로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주 땅에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배움의 요람을 만들고 싶다”며 “많은 분들의 작은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롄은 중국 랴오닝성 랴오둥 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인구 600만 명의 도시다. 1950년 뤼순(旅順)과 합병하여 뤼다(旅大)로 이름을 바꿨다가 81년 다시 다롄으로 고쳤다.

다롄=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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