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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53. 빛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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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남산에서 대통령 선거 연설문을 구상하고 있던 필자.

내가 왜 대통령 후보 연설문을 써줘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은 쉽게 끝냈다. 드라마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는 작가고 저쪽은 연기자다.

우선 우리의 가난을 맹공격했다. "해마다 닥쳐오는 보릿고개란 무엇이냐! 왜 외국 원조를 구걸하는 신세가 됐느냐. 우리 힘으로 벌떡 일어나 보자. 대한민국은 여태까지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해왔다. 내 눈에는 저기 번영의 고지가 분명히 보인다. 그곳을 향해 직행하겠다. 내게 조타수 역할을 맡겨주시라. 그리고 따라오시라. 여기저기 무수한 공장이 서야 된다. 우리 의지가,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가 유일한 밑천이다. 잠에서 깨어나라! 꿈을 품고 달려가 보자. 세상이 달라진 먼 훗날 한 할망구(할머니)가 손자에게 과자를 먹여주며 공장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한 연기를 보고, 그래 옛날 박아무개라는 사람이 세상을 바꿔놨지 하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분이 있거든 주저마시고 그분을 찍으시라. 나한테 꼭 투표하라고 압력을 넣는 자가 있거든 따르는 척하고 따르지 마시라."

이 초안을 보고 신범식 대변인은 내 손을 꽉 잡았다.

"강렬합니다. 당장 깨끗하게 써서 올리겠습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군산화력발전소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셨는데요. 다 읽고 나서 씩 웃으며 '이 양반이 내 가슴팍에 들어와 앉아 있네' 하시더라고요."

장충단공원에서 선거 유세가 있던 날 나는 가보지 못했다. 다섯 사람이 쓴 것을 종합해 이야기했을 테니까 내가 써준 게 얼마나 반영됐는지 모른다. 20만명이 운집했다던가. 이 선거에서 그는 10여만표 차이로 간신히 당선됐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느날 고향에서 김남용.이광우씨가 찾아왔다. 괴산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했다. 나가면 반드시 된다고 장담했다. 나는 그때 성북동 111번지, 고지대에 살고 있었다. 방에서 내다보면 하늘만 보인다. 그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고향을 위해 일하는 것은 즐거운 명예지요. 그런데 충청북도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상해요. 일본에 갔다왔다해서인지 한반도 전체가 보이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온 세상과 인간 모두를 걱정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이 버릇 버릴 수가 없어요. 용서하세요."

훗날 김남용씨는 한국화장품이라는 큰 회사를 세워 회장이 됐다. 만나면 언제나 웃었다. 술도 사줬다.

"인간 걱정 여전히 하고 있나요?"

"예"하고 나도 웃었다.

"박정희가 어떻게 세상을 다루는가 항상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랬다. 나는 박정희라는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일제 때 육군사관학교을 나왔다는거? 그까짓것이 무슨 문제냐. 여수사건? 지나간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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