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정책 보조맞추며 유연한 대응-국교정상화 꾀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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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에서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전후(戰後)외교의 마지막 과제」라 부른다.45년 패전후 최근까지 미국은 물론 옛 공산권과도 관계를 정상화하고 유엔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넘볼 정도가 됐지만 유독 북한과 수교를 이 루지 못했다는 의미다.가상적(假想敵)인 북한과의 수교는 안보부담을 던다는의미도 크다.적극적으로 치고 나서지는 못하는 대신 주변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일본의 외교스타일은 대북(對北)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그동안 북한 에 대한 일본의 접근에는몇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점이다.한국과 국교가 수립돼 있는 외교적 원칙 때문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실리측면에서도 당연히 한국측 입장을 배려해 가며 북한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확고한 자세다 .이 점은 앞으로 북.일수교 교섭이 재개될 경우 65년 한.일협정 당시의 협상경과와 수교조건을 북.일수교에 어떻게 준용(準用)하느냐는 문제로도 연결될 것이다.
둘째,미국의 대북정책 흐름에 편승하는 면이다.일본은 냉전시대는 물론 90년대의 변화된 국제환경 속에서도 대북정책에 관한 한 비교적 충실히 미국의 입장을 좇아 왔다.최근 활발해진 미국의 대북한 접근으로 일본으로서는 북.일 국교정상화 를 이룰 좋은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일본이 대북 쌀제공 문제에서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한동안 주저하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자 즉각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 한 예다.
셋째,일본은 국내적으로 대북관계에 관한한 정치권과 정부가 꾸준히 역할분담을 해 왔다.정부가 한국등 주변국과의 관계와 외교원칙을 고려해 신중히 행동하는데 비해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 왔다 .90년 가네마루 신(金丸信.사망)자민당 부총재가 평양을 방문해 북.일수교교섭의 물꼬를 튼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북한에서는 이 때문에 가네마루를 중국.일본 수교를 성사시킨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에 비유하며 극진히 여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분담금을 내는데 국민 여론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라도 시기를 더 늦추지 않고 북한과의 수교교섭을 재개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무엇보다 북한정세가 극히 혼미한데 따라 동북아에 예기치 못한 혼란이 발생할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교교섭이라는 연결고리라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에 힘입어 경제계도 북.일수교가 이뤄질 경우 어떤 이익을 챙길 수 있는지 면밀히 계산해 가며 채비를 갖추고 있다.심지어 언론계도 CNN의 평양지사 설치 움직임이 알려진뒤 북한에 진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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