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남자들의 사치품 … 럭셔리 시계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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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덕에 활동적인 전문가 이미지가 살아난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도 풍기죠.”

국내에 진출한 고가의 남성 시계 브랜드. 왼쪽부터 코를로프 판타즘, 줄스 오데마 콤플리케이션, 로저드뷔 엘스칼리버 크로노그라프, 바셰론 콘스탄틴 스켈리턴. [중앙포토]

금속무역업을 하는 엄태혁(35) 사장은 올 들어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백화점의 ‘더 하우스 오브 파인워치’ 매장을 세 차례나 찾았다. 상담을 거듭한 끝에 최근 IWC ‘포르투기스 크로노그라프’(약 780만원)를 집어 들었다. “언제부턴가 비즈니스 모임에 가면 시계 이야기를 부쩍 많이 하더군요. 와인이나 골프 얘기를 하면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투자가치도 있고요.”

고급 시계가 요즘 한국 남성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패션디자인스쿨인 에스모드서울의 홍인수 교수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면서 남성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요즘 국내에서 시계가 대표적인 남성 액세서리로 등장한 것도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간호섭(패션디자인학) 교수는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라기보다는 자신의 멋과 스타일을 연출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세계 5대 명품 서울에=백화점 명품관들은 이런 트렌드를 가장 먼저 읽는다. 시계의 5대 명품이라는 바셰론 콘스탄틴, 오데마피게, 블랑팡, 브레게, 파텍 필립이 최근 몇 년 새 모두 한국에 진출했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은 지난해 12월 브레게·블랑팡 등 스와치그룹의 명품 브랜드를 모아 ‘이퀘이션 두 땅’ 매장을 열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9월 본점에 ‘더 하우스 오프 파인워치’라는 명품 시계 매장을 만든 데 이어 지난달에는 무역센터점에 ‘이퀘이션 두 땅’ 국내 2호점을 열었다. 갤러리아백화점에도 명품 시계만을 취급하는 ‘빅밴’ 매장이 생겼다. 청담동도 변신 중이다. 7월 말 프랑스 명품인 코를로프 매장이 들어선 데 이어 2일에는 국내 최초로 오메가가 전문매장을 열었다. 카르티에도 개장 준비를 하고 있다.

매출도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 해외명품담당 박상옥 과장은 “요즘 명품관 매출 중 70% 정도는 남성 시계가 차지할 정도”라며 “일상 업무를 하면서도 착용하기 좋은 가죽 줄 제품이나 희소성이 강조된 한정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세금 논쟁도 벌어져=명품 시계를 찾는 이들은 주로 전문직 종사자다. 블리스자산운용의 장성욱(44) 상무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 백화점 명품관과 청담동 매장을 수차례 오갔다. 그는 “고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스타일의 시계를 찾고 있다”며 “요즘은 상대방의 시계만 보고도 그 사람의 직업까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명품 시계를 애완동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계와 달리 매일 태엽을 감아줘야 생명을 유지하는 속성 때문에 생활의 일부가 돼 버린다”는 것이다.

명품 시계와 관련한 끊임없는 ‘세금 논쟁’은 숙제다. 웰타임코리아 유강(55) 사장은 “터무니없는 세금(특별소비세 등) 때문에 국내 가격이 너무 비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세금 부담을 낮춰주면 오히려 걷히는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호섭 교수는 “고급 시계의 세금을 낮추면 국내 시계제조업체들의 매출이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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