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올린 결혼식 메달 따고 할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훈련 도중 포즈를 취한 김정훈 선수右와 부인 김난희씨.

강원도 춘천 의암빙상장에 있는 풋살경기장. 정식 축구장보다 작은 규모(20mX40m)의 운동장에서 축구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공이) 흐른다, 흐른다. 6, 5, 4, 3. 정훈 잡고 돌아! 바로 때려! 나이스!” 김난희(31)씨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공을 몰고 오던 허석(34) 선수가 패스를 하자 김씨의 설명에 맞춰 김정훈(33) 선수가 공을 받아 뒤로 돌았다. 그리고 골대를 향해 슛을 했다. 공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멋진 터닝슛이었다. 김 선수는 눈을 감싸고 있던 안대를 벗고 땀을 닦았다. 이때가 지난달 28일 오전 10시30분쯤이다.

김씨는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가이드다. 가이드는 상대편 골대 뒤에 서서 시각장애인 선수에게 골대 위치나 상대팀 수비수의 움직임, 슈팅 순간 등을 일러준다. 골라인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m당 숫자로 알려준다. 선수들은 가이드의 설명과 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공을 좇는다. 시각장애인용 축구공은 안에 들어있는 구슬 때문에 움직이면 방울소리가 난다.

김씨가 가이드를 시작한 것은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로 뛰는 남편 김정훈씨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1일 출국한다. 목표는 메달을 따는 것이다.

두 사람은 1998년 인터넷 게임 동호회에서 만났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인터넷 게임에 관심이 많던 김씨가 우연히 접한 시각장애인용 게임이 계기가 됐다. 그 게임을 하면서 김 선수를 처음 만나 3년간 사귀었다. 결혼 프러포즈는 김 선수가 먼저 했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처음 만나서 그런지 장애인이란 선입견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집안 반대에 부닥쳐 집을 나왔다.

김 선수는 어린 시절 골목대장이었다. 그러나 망막세포가 죽어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은 뒤부터 방안에만 처박혀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한빛맹아학교를 졸업한 20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안마사로 일하는 시간 외엔 거의 컴퓨터에 빠져있었다.

결혼 뒤 김씨는 남편의 위축된 모습이 안타까웠다. 김씨는 “나랑 있을 땐 당당한데, 장애 때문인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3년 남편을 이끌고 시각장애인 축구동호회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남편은 볼링도 시작했다. 2006년 서울 세계시각장애인볼링대회에서 4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스포츠 재능이 뛰어났다.

장애인은 운동을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지속하는 것은 더 힘들다. 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때부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축구팀 이옥형(42)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다수 선수가 생업을 미룬 채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축구는 메달 기대 종목이 아니다. 때문에 지원도 빈약하다. 올림픽을 대비하면서 선수들은 훈련장 인근 모텔에서 한 달 넘게 투숙했다. 한 명은 침대에서, 한 명은 바닥에서 잤다. 그래도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훈련했다. 공식 훈련기간인 90일보다 열흘이나 더 연습했다. 이 감독은 “예선 땐 파울을 유도해 패널티킥을 얻은 덕분에 간신히 이겼지만 본선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선에서 일본을 물리친 기세로 본선에서는 중국을 꺾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동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 장뿐인 올림픽 티켓을 땄다. 중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했다.

김 선수는 “처가 반대로 아직 결혼식을 못 올렸다. 메달을 따 어른들을 모셔놓고 정식 혼례를 치르고 싶다”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글·사진=정선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