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이 삼촌의 꽃따라기] 금방망이, 서해안의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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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금방망이가 우리 손에 있었나 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막판 선전은 그야말로 ‘금 나와라 뚝딱’이었다. 야구 선수들은 계속되는 극적인 승부 끝에 자신들의 방망이를 금방망이로 만들었다. 금방망이…. 꽃 사진을 찍는 나에게도 금방망이가 있으니 그건 이맘때쯤 샛노란 꽃을 피우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식물 공부를 처음 시작하던 올챙이 시절, 나는 괭이밥과 애기똥풀조차 잘 몰라 결국 꽃잎의 수로 구별하곤 했다. 누가 들으면 참 한심하다 할 일이다. 초보 시절에는 평상시 자신이 자주 가던 곳부터 찾아다니게 마련이므로 서해를 좋아했던 나는 자연히 서해안의 식물부터 섭렵하게 되었다. 아는 곳, 가는 곳이 뻔한지라 식생이 괜찮다 싶으면 아무리 멀어도 그곳이 제일인 줄 알고 계속 가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서해안의 영흥도였다.

영흥도는 크지 않으나 식물종이 매우 다양한 지역이 곳곳에 있다. 그런 데만 골라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초가을 즈음, 노란 꽃을 피우는 식물의 커다란 군락지를 만났다. 도감을 뒤져보니 금방망이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자생지가 맞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던 오래된 도감에는 금방망이가 강원 이북의 높은 산이나 제주도 한라산의 고지대에 드물게 자란다고만 되어 있었다. 괭이밥을 애기똥풀인줄 알고 뜯으면서 왜 애기똥풀 특유의 액이 나오지 않을까 하던 시절이었으니 주체적인 판단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박사님의 새 책을 샀다. 그 책에서 금방망이의 분포지에 덕유산·태백산·설악산과 함께 서해안 섬이 추가된 것을 보고 나의 관찰이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국립수목원에 말해주었더니 아마도 그 지역에서 금방망이 군락지를 발견한 것은 내가 처음일 거라고 해서 어린(?) 마음에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있다.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식물이 바닷가의 낮은 야산에 무리지어 자란다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곳 ‘나만의 파라다이스’가 경치 좋고 낚시하기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숙박시설과 매점이 들어서게 되었다. 땅이 파헤쳐지고 폐자재가 나뒹굴면서 그 일대의 식물들은 생매장되고 말았다. 몇 해 전엔 산사태가 나면서 쓰러진 나무 몇 그루가 하필이면 금방망이의 자생지를 덮쳤다. 거기에 자연적인 천이 현상으로 숲이 우거지고 그늘이 지면서 금방망이의 영토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올해 다시 찾으니 금방망이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먹지 못해 야위어 가는 위암 말기 환자의 모습이랄까? 사라져 가는 식물을 보는 일은 그래서 씁쓸하다. ‘금 나와라 뚝딱!’처럼 금방망이의 새로운 자생지가 뚝딱 하고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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