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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부시 이후의 미국과 살아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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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번 주를 계기로 지구촌의 관심은 베이징에서 미국의 콜로라도주 덴버로 옮겨가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13억 중국인들이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내보였듯이 미국인들은 덴버에서 오바마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면서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행사에 돌입한다. 9·11 테러 이후 직선적이고 공세적 성향의 지도자를 내세웠던 미국이 내일 덴버에서 젊음과 지성, 매력, 최초의 흑인 후보라는 역사성을 두루 갖춘 새로운 인물을 민주당 후보로 선출하게 된다.

지구촌 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헤게모니 국가 미국이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는가는 당연히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영향을 준다. 지난달 오바마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10만 명 이상의 독일인이 운집한 것도 단지 새로운 스타 정치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차원에서 미국과 넓고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가 오바마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가는 단순한 뉴스거리를 넘어 우리 삶의 한 변곡점이 된다(물론 본선 결과는 11월에 결정되겠지만, 당선 여부를 떠나 오바마의 등장 자체가 하나의 중대 현상이다).

하지만 오바마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지금까지의 반응은 다소간 상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한쪽에서는 지금쯤 오바마의 외교안보 분야 참모들의 프로필을 챙기고 이들이 최근 동북아,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쓴 글이나 발언들을 분석하고 있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홀브룩 전 유엔대사나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와는 어떤 인맥의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으리라.

이 같은 습관적인 대비는 곧잘 성급한 낙관론으로 이어진다.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오바마는 국제문제에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고, 핵심 참모들도 다자대화를 주요한 외교 수단으로 삼는 협상파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낙관론의 주된 근거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대화의 기조가 유지되고, 6자회담은 탄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게 된다.

이처럼 발빠른 낙관론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는 하겠지만, 이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국인들의 심층구조를 이해하는 우리 고유의 관점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국가의 외교정책과는 달리 미국 외교는 미국인들의 심성과 이해, 이익을 직접 반영하는 경향이 짙다. 질서를 주도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한 대부분 국가의 외교가 자신의 성향보다는 바깥의 흐름에 대응하는 반응외교(reactive diplomacy)로 기우는 반면에, 미국 외교는 스스로 만들어 낸 역할과 이미지를 밖으로 투사하는 외교에 가깝다. 이 점에서 오바마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미국 사회의 흐름이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오바마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가장 큰 흐름은 미국인들의 내향성의 복귀라고 본다. 오바마가 내건 ‘변화’와 ‘희망’이라는 핵심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한 낱말들이지만, 오바마의 변화와 희망이 지향하는 곳은 미국 내부다. 경제적 시름은 깊어가고 사회 분열은 심화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수백 조에 달하는 돈을 이라크와 아프간에 쏟아붓던 대외지향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이라크에 나가 있는 미군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미국인들의 세금도 전쟁보다는 사회복지와 의료, 교육에 써야 한다는 반성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같은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서, 미국인들은 ‘변화’를 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나 공화당의 매케인은 모두 소속당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비주류들이다. 또한 두 후보 모두 개혁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내향성은 밖으로는 이념외교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지난 8년간 지속된 민주주의의 전파라는 이념외교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념외교는 밖에서는 지도력과 신뢰의 약화를 가져왔고, 안으로는 거대한 빚과 극심한 분열만을 가져왔다. 결국 팽창적인 이념외교에서 조용한 실용외교로의 전환이 모색될 것이다.

내향성과 실용주의는 미국 역사에서 반복해 나타나는 흐름이지만, 2008년 버전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인 셈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