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칼럼>순수파 알피니스트 '엄탱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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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우리나라 고봉 등정자중에 「엄탱크」라는 애칭을 가진 산악인이있다. 엄홍길.자신을 드러내놓기를 좋아하지 않는 겸손한 청년이다.그는 8천급 고봉 14개를 목표로 활동중이다.
엄홍길은 지난 88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면서 산악계에 데뷔했다. 그후 8천급 고봉 7개를 오르며 지칠줄 모르는 뚝심으로 국내 고봉등정의 선두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 93년에는 초오유(8천2백1).시샤팡마(8천12)연속등정에 성공했다.95년 마칼루봉(8천4백63)에 이어 국내 산악계의 마지막 과제였던 브로드피크(8천47).로체(8천5백16)봉에 올라 한해에 8천급 고봉을 세개나 오르는 탱 크같은 추진력을 보였다.지난 4월에는 다울라기리(8천1백67)등정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가 오른 7개봉중 6개봉은 무산소등정인데다 셰르파의 의존없이 소수인원으로 속공을 하는 알파인 스타일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8천급 고봉에 대한 무산소등정은 모험이나 다름없는 어려운등반이다.그는 뛰어난 고소 적응능력과 강한 체력 으로 밀어붙이는 돌격형 산악인으로 철인의 경지를 보여줬다.
「엄탱크」라는 애칭이 많은 산악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이유는 ▶오르는 행위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자신이 이룬 등반성과를 과장하지 않은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는 순수한 알피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5년 겨울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어렵다는 남서벽 등반에 도전하면서 8천급 고봉에 대해 첫경험을 쌓게된다.당시 그는 7천5백까지 진출하는데 만족해야 했으며 다음 해에는 8천4백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또한 안나푸르나에서 한번,낭가파르바트에선 폭설 속에서 9시간의 사투를 벌이면서 동상에 걸려 오른쪽 발가락 두개를 절단하는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93년 시샤팡마 등반 때는 폭설속에 갇혀 이틀동안의 비박으로동상이 걸린데다 동료 산악인 1명을 잃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낭가파르바트 등반 때는 최종캠프에서 악천후를 만나 베이스캠프와통신마저 끊고 등반에 집착하기도 했다.승부근성 이 강한 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일부에선 팀워크를 깨는 행위라고 질책하기도했다.고소 등반은 등반자 자신만이 어려운 현지상황을 정확히 판별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여건을 감안할 때 베이스캠프에남은 동료들이 편견을 갖고 매도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세계 산악계에는 14고봉 완등자를 배출하기 위한 지원이 대단하다. 지금껏 14봉을 완등한 산악인은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예지 쿠크츠카(폴란드.사망).에라르 로레탕(프랑스)등 세명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2일 정부가 체육훈장 맹호장을 포상한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그의 7개봉 등정은 중간평가에불과할 뿐이다.앞으로 있을 나머지 7개봉을 향한 그의 행보에 우리 모두 성원을 보내주자.
이용대〈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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