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KBS맨, 5개월 캠프 있었다고 낙하산 모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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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신임 사장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낙하산 논란'으로 19일 사장 응모 포기 성명을 발표한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중앙SUNDAY

‘KBS 낙하산 사장 논란’의 주인공 김인규(58) 전 KBS 이사가 입을 열었다. 김 전 이사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이을 유력한 후보자로 꼽혔지만 이명박 대선캠프 방송전략실장 등의 이력 때문에 낙하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는 19일 사장 응모 포기 성명을 발표했다. 21일 김 전 이사는 중앙SUNDAY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정 전 사장과 KBS 사장 선출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근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KBS 사장 공모 마감이 끝났다. 왜 포기했나.
“나를 두고 KBS 내부 게시판에서 의견 대립이 벌어지는 등 분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특히 야당의 정치 공세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 같아 부담이 됐다. 나는 ‘방송인 김인규’인데 ‘정치인 김인규’로 보는 시각도 참기 어려웠다. 조용히 포기할 수도 있는데 굳이 성명을 낸 것은 다른 지원자를 위해서다. 내가 나온다면 응모를 아예 안 하겠다고 전화한 사람이 여럿 된다. 마감 전에 입장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유력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언질을 받았나.
“전혀 아니다. 애초에 대통령이 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그래도 여당 쪽 이사 수가 6 대 5로 많기 때문에 내가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응모를 포기하라는 요청은 없었나.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직접 할 수 있겠나. 여당 내에서 나로 인해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일어나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들었다. 내가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낙하산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는 뜻인가.
“솔직히 KBS 사장이 하고 싶었다. 내 젊음을 바친 곳이다. 야근한 날만 1000일이 넘는다. 퇴사한 뒤 고려대와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공영방송을 연구한 경험도 살리고 싶었다. 올 2월 청와대 정무수석에 내정됐을 때도 정치인이 돼버리면 KBS 사장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렵게 거절했다.”
그는 이어 “내가 왜 낙하산이냐. 도대체 기준이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과 전혀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가 정권의 힘을 업고 발탁이 됐다면 몰라도 자신은 ‘KBS 공사 1기생’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도운 것은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2월 22일까지”라며 “5개월도 안 되는 기간 때문에 30년 방송인을 낙하산 정치인으로 폄하하느냐”고 항변했다. 김 전 이사는 1973년 KBS가 공사로 전환될 때 입사해 정치부장·보도국장 등의 직책을 맡으며 33년 동안 KBS에 몸담았다.

-정치인은 KBS 사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왜 대선캠프에 합류했나.
“맞는 말이다. 사실 나중에 KBS 사장에 나설 때 약점이 될까 봐 여러 차례 고사했었다. 그런데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방송 전문가 역할을 해달라고 하더라. 나는 선거운동이 아니라 선거방송에 기여했다. 당시 1위를 달리고 있어서 TV에 많이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해 MBC 100분 토론 출연도 주선했다. 일종의 자원봉사자로 급여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대선캠프 방송전략실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달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그게 문제가 됐다. 막말로 직함 없이 도와줄 수도 있는 거다. 솔직히 전임 사장은 지난 정권 창출에 전혀 기여를 안 했단 말인가. 직함 없이… 일종의 탈, 가면 그런 걸 쓴 것처럼….”

-정 전 사장이 실제로는 (김 전 이사보다) 더 심하게 정치 활동을 했다는 뜻인가.
“많은 국민이 그렇게 보지 않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드 인사라고. 2006년 내가 정 전 사장과 경합할 때도 정권의 힘을 얻어 (사장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쳤다.”

그는 2006년 정 전 사장의 연임에 맞서 사장에 공모했다. KBS 노조의 주관식 설문조사에서 그가 ‘KBS 출신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 1위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6 대 3(두 명은 기권)으로 패한 뒤 “정치권에서 임명한 KBS 이사가 사장을 선임하는 방식의 한계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KBS가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려면 일본 NHK처럼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 사장 선임 방식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
“청와대에서 반대하면 안 되는 구조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 내가 다시 KBS 사장에 나서도 새 정권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대선캠프에 합류한 것인가.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 그런 마음이 숨어 있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2006년에 현실의 벽을 실감했기 때문에…. 그렇다.”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발목을 잡힌 셈인데.
“아까 말했듯이 캠프 합류 때 이것이 나중에 약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심판받자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 내가 (캠프 가면 사장 안 된다는) 선례가 된 셈이다.”

-캠프에 들어갔던 걸 후회하나.
“그런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솔직히 KBS 사내 논란만 문제가 됐다면 밀고 나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이 공세를 펼치니 현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까 걱정이 됐다. 이 대통령이 촛불시위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지 않았나. 한 팀으로 일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한 팀이었던 정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공정한 보도를 하기 힘들 것 같은데.
“나는 30년간 일한 ‘방송쟁이’다. ‘이명박을 위한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겠나. 보도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 현 정권에도, 야당에도, KBS에도 도움이 된다. 그럼 지금 방송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MBC ‘PD수첩’이나 KBS ‘시사투나잇’은 특정 이념 쪽으로 가지 않나. 시청자의 감정을 부채질로 불태우는데 그것이 선정성 아닌가. 감정을 격하게 일으켜 시청률을 높이고 결국 광고 수입을 올리자는 것이다. KBS도 시청료보다 광고 수입이 많은 상업적 공영방송이다. (내가 사장이 되면) 공영방송답게 연령·계층·지역별 의견을 고루 반영해 국민의 공감을 얻어 시청료를 올리고 싶었다.”

그는 펼치지 못한 꿈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김인규 사장 시키려고 정연주 해임시킨다”는 말을 더 이상 안 들어서 좋다고 했다.

-정 전 사장 해임이 정당하다고 보나.
“감사원과 KBS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 아닌가. 무리한 팀제 운영, 경영 부실 등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의 공정성도 잃었고. 사실 정 전 사장 역시 정권의 힘을 입어 취임했으면서 이제 와서 방송의 독립성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정 전 사장의 잔여 임기가 내년 11월 23일까지다. 차기 사장을 노리고 이번에 포기했다는 시각이 많던데.
“(흥분한 목소리로) 그런 프레임으로 보면 뭐든지 그렇게 보인다. 솔직히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KBS 얘기는 더 이상 안 하고 싶다.”
KBS 이사회는 25일 대통령에게 단수로 사장 후보를 추천한다. KBS 노조는 그 결과를 보고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구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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