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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을 찾아서] 대륙을 움직이는‘巨富 3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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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韓末)까지도 상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문서에서 축출시킬 만큼 명분에 집착했던 우리와 달리 이웃 중국은 사뭇 탄력적이었다. 그들은 조상을 기릴 때 집안의 부(富)를 일군 사람을 으뜸으로 내세운다. 심할 경우 재산을 남기지 않은 조상은 제사상도 챙겨주지 않는 게 장삿 속 중국인들이다. 하긴 친족 집단부터가 주식회사 시스템이라고 한다.

친족 집단이 공동재산을 운용할 때는 친족들의 출자액에 따라 수익 배분을 해온 관례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어에 배인 ‘돈맛’도 흥미롭다. ‘부∼자 되세요’란 덕담이 최근에야 유행했던 우리와 달리 그들은 예전부터 구정(舊正)때 ‘궁시파차이!’ (恭喜發財, 돈 많이 버십시오)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재(理財)에 대한 그들의 오랜 관심을 염두에 둔다면 고대 이래 중국에 큰 장사꾼들이 대량 배출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 신흥 갑부는 항저우에 1000만달러를 들여 백악관 건물과 똑같은 집을 지었다던가? 전 세계 화교가 보유한 유동 자산은 또 어떤가? 그 규모는 물경 수조 달러로 추산된다. 중국 전체 GDP의 곱절 쯤이다. 자 그렇다면 중국 부자들의 진면목을 책을 통해 만나볼 차례다.

『장사의 신 호설암』에 그려지는 호설암은 청나라 말기에 ‘돈의 스타’로 불리며 14억 중국인의 정신을 지배해온 큰 상인의 하나다. 『상신 리자청(李嘉誠)』은 또 어떤가. 그는 불패의 경영 50년 만에 현재 아시아 최고의 재벌로 떠오른 홍콩의 현대판 상신(商神)이다. 이 두 책이 사람 얘기라면, 『중국 No.1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경영서 쪽이다. 즉 중국발(發)경영서의 등장을 알리는 책이다.

알고 보면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부터 거상(巨商)들을 배출한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 초나라 출신인 범려, 무왕을 도와 왕조를 창업한 강상, 제나라 환공을 오패의 맹주로 만든 관중 …. 오랜 중상억농(重商抑農)의 전통을 가진 땅이기에 근대 이전과 현재의 거상 인 호설암·리자청 두 명과 함께 장루이민(張瑞敏)이 이끄는 하이얼그룹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귀가 잘 맞는다. 우선 호설암. 그는 한마디로 ‘청나라의 잭 웰치’다. 그러나 『장사의 신 호설암』에 빼곡하게 등장하는 경상지법(經商智法·경제와 상업의 지혜로운 법칙)이란 현대 기업의 경영기법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중국 전래의 처세훈과 한 묶음으로 읽혀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요령으로 다가온다.

그의 어록에서 몇 개만 추려보자. “뜻을 세우면 칼날에 묻은 피도 기꺼이 핥아라” “살아 움직이는 자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간판(이미지)을 지켜라” 등등. 따라서 호설암 식의 경영스타일은 근대적 체계를 갖추진 못했지만 마음에 호소하는 힘은 외려 강하다. 하긴 그의 삶 자체가 메시지다. 맨주먹으로 부를 일으켰던 그는 상인의 신분으로 정부를 대표했던 첫번째 인물로 기록된다.

금융업·약재거래·군수품 조달업 등 손을 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수완을 보였던 그가 밝히는 경영의 으뜸 원칙인 지(智)란 시대변화를 움켜쥐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자금운용·인재활용법 혹은 사업전략이 아니다. 사회의 안정을 염두에 뒀던 그의 큰 안목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서양세력을 견제하여 청나라 조정을 안정시키려했던 노력을 높게 평가받는다.한데 현대의 거부(巨富)를 다룬 『상신 리자청』에서 호설암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이유는 왜일까? 흥미롭게도 이 책 저자는 한국인. 『이병철 vs 정주영』등을 펴냈던 한국인 저자가 펴낸 책이지만, 묘하게도 중국의 큰 장사꾼들 사이의 구조적인 공통점 때문에 호설암과 리자청은 100년 시차를 건너 뛰어 서로 공명(共鳴)을 한다.

책에는 홍콩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런 말을 소개한다.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자청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사실 홍콩 상장기업의 4분의 1이 그의 것이다. 개인재산 78억달러로, 아시아의 1위 자리 역시 리자청의 것이다. 덩샤오핑 역시 그를 찬양했지만, 리자청의 목소리에는 호설암과 또 달리 현대 기업 경영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책이 던져주는 키워드 하나가 요즘 유행하는변화경영을 설명하는 리자청의 다음 레토릭. “명사수란 총을 거두는 동작이 꺼내는 동작보다 빠른 법이다.” 그런 그는 전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10%를 처리하는 해상왕인가 하면, 캐나다의 하늘도 주름잡는다. 캐나다의 가장 큰 항공사인 에어 캐나다가 그의 소유이니까. 하지만 그 역시 당대 발복(發福)한 케이스다. 13세 때 찻집 심부름꾼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던 불우했던 성장기 때문이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중학교 진학이 미뤄졌고, 이 통에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당연히 『중국 No.1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한국인이라면 긴장감을 가지고 읽을 수밖에 없다. 하이얼이 한국의 삼성 등 선진 사례에 대한 분석을 이미 끝냈다는 정보(575쪽), 그리고 그들은 이미 일본의 도요타나 미국의 GE 같은 세계 초유량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서술 때문이다. 그 정도는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세계는 중국으로 들어가고, 하이얼은 세계로 나온다”는 식의 책 곳곳의 스케일을 접하다보면, 덜컥 겁부터 나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의 부실한 냉장고 제조기업 하이얼은 직원들이 회사 건물 아무 곳에나 오줌을 누고 다닐 만큼 허술했던 파산직전의 기업. 그런 회사를 현재 세계 500대 기업으로 성큼 끌어올린 주인공이 장루이민이다. 장루이민이 이끄는 하이얼은 중국 민영기업 중 매출액이 1위이고, 백색 가전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컴퓨터를 포함한 가전 분야는 세계 5위.

올해 초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가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8인’으로 장루이민을 꼽은 것도 자연스럽다. 사진을 보면 얼핏 범용해보이는 인상이지만, 그는 예사 사람은 아니다 싶다. 서구의 선진 경영이론과 중국의 철학을 결합한 독자적인 사람 중심의 기업이론, 그의 세계화에 대한 공격적인 전망 등은 중국경제의 오늘과 내일로 읽힌다.

결국 세 권의 중국발 경제·경영서들은 독서시장의 변화를 상징한다. 서점 경제·경영서의 으뜸 수입 당연히 미국 중심의 서구로 국한됐다. 잭 웰치·피터 드러커·빌 케이츠 등과 그들을 다룬 책들 …. 이제 중국발 경영서들이 속속 등장하니 수입선 다변화를 환영해야 할까, 아니면 몰려오는 중국 책에 대비책부터 세워야할까.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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