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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틀 바꿀 입학사정관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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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9학년도 대학입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이다. 올해 16개 대학이 이 제도로 학생을 선발한다. 이제까지 대입 전형은 단순히 성적을 기준으로 한 학생 선발 방식에서 그 명칭만 달리한 전형 명칭의 다양화였지, 전형 요소의 다양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성적 이외에 잠재 능력과 적성, 발전 가능성, 개인적인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대입 전형의 질적인 변화의 시작이다. 이 제도의 확대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길을 실질적으로 다양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고, 고교 교육 정상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 입학사정관제 지원 대학을 40개 대학으로 확대하고 국고 158억원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기 위하여 선결돼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고교와 대학의 실정을 잘 아는 입학사정관 확보가 급선무인데 전문성을 겸비한 입학사정관 양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를 시범 도입한 대학들은 국고 지원을 받아 입학사정관을 채용했다.

그러나 이 낯선 제도가 대입 전형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이 이들을 계약직으로 근무토록 하고 있다. 학생 선발 업무는 단순히 입학 관련 조직의 일이 아니라, 대학의 발전과 도약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핵심 업무다. 입학사정관제 정착을 위한 정부의 지원은 단기적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입학 업무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위한 대학 내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대학은 일반 국민에게 입학사정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학 스스로 공정성을 준수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전형을 만들어 입학사정관을 활용함으로써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부정적인 논란과 연관될 수 있다. 따라서 취약 지역 고교들을 배려하고, 기여입학제의 유혹을 방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 감시기구가 작동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인재 선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우리 대학은 어떤 대학이고, 어떤 분야를 특성화하고 있으며, 향후 어디로 가야 할지 대학 내 구성원들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문자답 속에서 각 대학은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을 도출하고, 이 인재상에 맞는 핵심 역량을 찾아내 학생 선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학부모나 학생에게도 근본적인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만의 하나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잘 대비해 조금이라도 평판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이라면 이 제도는 또 하나의 제도 변화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까지 계량화된 성적에 익숙했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학생부 등 객관적 자료가 아닌 정성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방식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학생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을 찾는 노력이 점수 1~2점을 올리는 노력에 앞서야 할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다양하며, 세계적 수준의 인재가 보여주는 창의력은 기존의 교육 제도와 선발 제도로는 찾아내기도 키워내기도 어렵다. 우리가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진실로 보고자 하는 것은 학생의 성적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객관적 점수보다는 감춰진 가능성을, 성취보다는 열정을 파악하는 일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을 찾아내는 입학사정관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대학·학생·학부모의 신뢰와 상호 솔직함이 가장 필요한 덕목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흥안 건국대 입학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