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원로추상화가 김훈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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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화가 김훈이라는 이름은 낯설다.50년대에 도미,내처 그곳에서살다 89년부터 파리에 머무르는 그이기에 국내 관람객들에게 그는 당연히 낯설다.그러나 그는 50년대 이제는 화단의 원로인 권옥연.유영국,그리고 작고한 조각가 문신 등과 함께 추상미술전시회를 열고 여러 현대작가전에 초대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 초창기 화단의 일원이었다.92년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그간 그의 해외에서의 활약을 웅변한다.
그 김훈(72)씨의 작품전이 2년만에 22일부터 6월1일까지서울청담동 신세계 가나아트((02)514-1540)에서 열린다.화가들 작품에 「장식성」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반가운 것이 아니다.거기엔 치열한 작가정신이 결여된 그냥 「예 쁜 그림」이라는 질책의 의미가 담겨있다.한편으로 그것은 화가에게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기도 한다.
단순한 형태미와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색의 배합으로 그도 때로는 「장식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하지만 간결한 화법속에스며있는 운치,명상이 깃들여있는 서정성은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장식미를 뛰어넘는 화풍을 느끼게 한다.또 그의 작품은 젊다.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나이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재주많고 유망한20~30대의 젊은 작가가 아니냐고 되묻는다.칠순을 넘긴 원로작가면서도 원숙미와 아울러 늘 젊은 감각으로 신선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이런 이유에서 나이만으로 그에게 「원로」라는 단어를붙이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추상회화지만 거부감없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가 그의 작품에는 들어있다.한국사람이면서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에서 교육받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그의 독특한 배경이 어느 문화에 있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2년전 개인전 당시 선보였던 작품들에 비해 이번에 출품된 30여점의 신작들은 한결 단순화된 모습을 띤다.동그라미.세모.네모꼴의 기하학적 패턴을 기본 구성요소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좀더 대담한 화면구성이 눈길을 끈다.
독특한 리듬감으로 단순한 형태미를 띠는 것이다.
유영국의 작품에 등장하는 삼각형 무늬가 자연의 산을 상징하는것이듯 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패턴도 역시 자연을 형상화한 것이다.산을 이루는 삼각형과 하늘을 덮는 반원,때로는 해와 달과 별이 도식화돼 등장한다.거창하게 우주 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의 작품은 하나의 온전한 자연세계를 담고 있다.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일찍 서구 모더니즘에 눈뜬 한국추상미술선두주자의 작품세계를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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