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국적을 택하고 싶은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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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추성훈은 인기 대박이다. 특히 젊은층과 주부들이 흠뻑 빠져들었다. 국적은 상관 없고, 실력과 매력만으로 판단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이용대 선수를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부른다는데, 추성훈도 이미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베이징 올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 당예서(27)는 거꾸로 한국으로 귀화해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도 귀화 7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숱한 설움을 받았다. 한때 대표 선발이 물 건너간 듯했지만 올 1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대표 선발전에서 파죽의 10전 전승을 거두면서 그동안의 질시와 견제를 싹 날려버렸다. 역시 실력이다(게다가 당 선수는 예쁘기까지 하다).

‘세계화를 가장 정확하게 정의해 주는 사건은?’이라는 퀴즈가 있다. 답은 ‘다이애나비의 죽음’. 뒤따르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영국 왕세자비가 이집트인 남자친구와 함께 프랑스의 터널을 지나다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제 엔진을 단 독일 자동차(벤츠)를 벨기에인이 운전하고 있었는데, 미국인 의사에게 브라질 약으로 치료받고 있던 그는 스코틀랜드산 위스키를 마시고 취한 상태였다. 게다가 자동차는 일본제 오토바이를 탄 이탈리아 파파라치에게 쫓기고 있었다’.

추성훈이나 당예서를 보면 이제는 자동차나 위스키 정도가 아니라 국적도 세계화 시대에 들어선 느낌이다. 개인의 꿈과 행복을 위해 국적을 고르는 시대 말이다. 물론 희망한다고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든 매력이든 노동력이든, 받아들이는 나라에 이익이 돼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과 포용력을 갖춘 나라일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인디언·중국인의 피가 섞인 흑인 아버지와 태국인·중국인·백인의 피가 섞인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타이거 우즈가 미국에 선사한 엄청난 국익을 생각해 보라! 텃세 부리고 피부색이나 따지는 배타적인 나라에서도 어쩌다 그런 인재가 태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엔 말라죽고 말 것이다.

올림픽은 국가 대항전이다. 덕분에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역설적으로 세계화 현상이 더욱 부각됐다. 경기력이 우수한 나라의 선수·지도자는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올림픽 참가국 중 21개국이 중국인 탁구 선수와 코치를 영입했다. 미국 탁구팀 4명은 모두 중국 출신이다. 양궁에 출전한 49개국 중 13개국 대표팀은 한국인 지도자가 가르쳤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국적 이동의 흐름과 방향성이다. 개인의 꿈과 행복을 위해서라지만,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랑스 카누 대표 선발 경쟁이 워낙 치열해 국적을 토고로 바꾼 뒤 동메달을 따낸 벤자민 보크페티(27) 정도다. 대개는 못사는 나라에서 잘사는 나라로, 배타적인 나라에서 포용하는 나라로 옮겨간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적’은 어느 정도 매력이 있을까. 실력 있는 외국인이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국적일까. 안타깝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아직 한참 멀었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