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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대학이 사회를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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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샌프란시스코에는 풍광(風光)이 좋은 탓인지 집없는 거지들이 특히 많다.미국 최고의 명문중 하나인 스탠퍼드대학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근교 팔로 알토도 예외는 아니다.두해전 비오는 11월저녁 테리 오데이를 비롯한 스탠퍼드대학생들은 대 학주변의 무주택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했다.40여 무주택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단기적 방안과 장기계획을 세웠다.단기적 방안은 임시거처를 마련하는 일이다.학생들의 제안에 감동한 주민들이 1백여 창고를 잠자리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장기계획은 무주택자들에게 일자리를얻어주고 무료합숙소를 짓는 일이었다.학생들은 시 의회와 이를 상의하고 구체적 해결방안을 지금도 연구중에 있다.
여기서 대학생들은 무엇을 얻는가.삶의 구체적 현실속에서 이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그 잘못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풀어나가는지 그 방법을 찾게 된다.심각한 사회문제를 긍정적으로 풀어가는방법을 배운다.불평.불만.항거.집단투쟁 방식으로 현실을 바꾸려는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현실적 대안으로 긍정적으로 모색하고있다.이런 대학생운동이 지금 미국에선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를 통칭해 대학공동체운동(Campus Compact)이라부른다.1985년 브라운대학 스웰러총장 주도로 스탠퍼드대와 조지 타운대 총장이 대학과 사회봉사를 연결하는 협의체로 창설한 것이다.10년이 넘은 지금 6백여 대학이 의료.노 동.주택등 사회문제에 동참하는 놀라운 개혁운동으로 확산됐다.
물론 미국사회는 전통과 습관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미국 국민의 50%가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봉사가 생활화된 특이한 공동체사회다.그러나 심각한 사회문제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는 고금동서가 다를게 없다.쉽게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지 금 우리나라가정에는 80여만 어린이들이 나홀로 집에서 일터에 나간 부모를기다리며 방치된 채 살아가고 있다.때로는 성냥을 그어대다가 불타 죽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맞벌이 부부는 출퇴근때마다 아이들을 맡기고 찾으러 다니느라 동분서 주한다.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텅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 골목을 기웃거리며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문제를 대학이,대학생이 앞장서 풀어나가려 한다고 하자.대학주변 주택가에 나홀로 어린이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를 한다.구청.동회와 상의해 회의실 하나를 빌린다.나홀로 어린이들을한자리에 모아 놀이를 겸한 탁아를 맡는다.또한 방과후 배회하는어린이들을 학교에 다시 모아 컴퓨터 교육과 영어 공부를 대학생이 자진해서 맡는다.학부모와 학교가 최소한의 경비를 내고 필요시설을 갖출 수도 있다.지역단체와 연계하고 지방 행정기관과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면 문제는 얼마 든지 더욱 효과적으로 풀 수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학은 무얼하고 있는가.민주화.반독재 투쟁으로 일관되었던 대학사회가 지금은 투쟁의 방향을 잃었다.싸울 목표가 없고 투쟁의 대상이 없으니 등록금투쟁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세몰이를 하고 있지만 공허한 투쟁으로 끝나고 있을 뿐이다.학내동아리가 있어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지만 그 힘이 미약하다.작은힘을 집결하고 문제를 함께 푸는 사회봉사를 대학이 앞장선다면 대학이 사회를 바꾸는 추진력이 될 수 있다.학생 스스로가 앞장서고,교수가 동참하며,대학이 이들 을 후원하고,정부가 제도와 재정적 지원으로 이를 격려한다면 대학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중심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1주일간 대학총학장들과 미국 대학의 사회봉사활동을구체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부시 전대통령의 촛불재단(Points of Light Foundation),클린턴대통령의 국민봉사협의체(Corporation f or National Service),대학총장들의 대학공동체운동 이 모두가지난 5년사이에 확산된 미국의 사회운동이다.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민간단체와 정부,그리고 대학이 함께 풀어가겠다는 거 대한 사회개혁운동의 구심점이고 구체적 해결방안임을 확인했다.
우리도 말로만 사회복지를 떠들게 아니다.그 모두가 정부가 해야 할 몫이라고 떠넘길 일도 아니다.정부.기업.단체,그리고 대학이 스스로 앞장서 작은 일 하나라도 풀어가는 노력을 보일 때우리 사회는 바뀔 수 있다.
(논설위원) 권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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