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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늘지만 … 인수만 있고 합병은 없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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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27면

시네이 회장과 황주명 변호사가 14일 서울 조선호텔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데이브 시네이 플레시먼힐러드 회장과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대표 변호사. 두 사람은 서비스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네이 회장은 전 세계에 83개 지사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홍보·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를 이끌고 있고, 황 변호사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사이에 가장 높은 만족도를 얻으며 가장 글로벌하다는 평가를 받는 법률 서비스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브 시네이 플레시먼힐러드 회장 vs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대표 변호사

한쪽은 고객의 좋은 점을 찾는 홍보 분야고, 다른 한쪽은 잘못한 점이나 약점에 초점을 맞추는 법률 분야지만 두 회사 모두 고객의 요구와 이익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두 사람이 모처럼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경제의 주요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시네이 회장이 14일 서울에 들러 황 변호사를 찾았다. 3년 전 플레시먼이 충정의 홍보·컨설팅을 담당했던 게 인연이 됐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레 기업들의 인수합병(M&A) 문제로 시작됐다. M&A가 전 세계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플레시먼의 상위 100대 고객 가운데 70%가, 101~200위 기업의 절반이 M&A 등을 통한 해외 진출을 추진 중이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 기업 인수를 추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시네이=전체 M&A의 70%가 애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공기와 같다. 항상 둘러싸여 있지만 보거나 만질 수는 없다. 서류상으로 완벽해 보이는 M&A도 문화적 충돌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M&A라는 것이 시너지를 창출해 성과를 올리자는 것인데 여기서 걸리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황=한국 기업들은 특히나 문화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대주주는 직원들이 당연히 자신의 결정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유교문화와 40년 군사문화의 영향인 듯하다. M&A 과정에서도 문화는 무시된다. 합병보다 인수의 개념이 크다. 문화란, 쉽게 말해 일하는 방식의 차이다. 예를 들어 삼성은 모든 절차를 문서로 남긴다. 대우는 그 반대였다. 회식 때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지, 와인이나 맥주를 좋아하는지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외감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소외감이 생기면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한다.

공기업 민영화 성공하려면
시네이=해외 기업을 인수할 때는 현지 로컬 경영진이 등을 돌리게 해선 안 된다. 이것이 제1 원칙이다. 이들은 인수하는 쪽에서 모르는 중요 내용을 많이 알고 있다. 제2 원칙은 회사에 유익하지 않은 사람들을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수된 기업의 직원과 경영진에 새로운 경영진의 목표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인수된 기업 직원의 바람과 인수한 기업의 목표는 분명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그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도요타가 GM 소유였던 캘리포니아의 부실투성이 자동차 공장을 인수해 성공한 것도 바로 직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회사의 비전과 직원 개인의 비전 사이에 교차점이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민영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황=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공기업 직원을 자르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소통 부재 때문이다. 정부는 민영화가 국민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그로 인해 국제 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높이게 될지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충분히 연구해 “이래서는 공기업도 못 살고 국민도 피해를 본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차근차근 설득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으니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하다가 고생하는 중이다.

시네이=직원이 가장 신뢰하는 커뮤니케이션 통로는 바로 직속 상사다. 흔히 고위 경영진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업에서 뛰고 있는 중간관리자가 부하 직원에게 회사의 비전을 잘 전달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플레시먼은 독점 기업이던 미국 중부 전력회사를 경쟁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바꿔놓은 경험이 있다. 당시 우리는 다뤄야 할 모든 주제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환경 변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 소비자의 기대, 조직 개편의 방향 등을 설정했다. 회사 전체에 소그룹을 조직하고 2년 반에 걸쳐 변화의 필요성을 일일이 설득했다. 그에 적응하는 직원에게는 경제적 보상도 했다. 후에 이 회사는 워런 버핏이 투자한 세계 최초의 에너지 회사가 됐다.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시급
황=80년대부터 외국 기업들과 인수합병 건으로 일할 기회가 많았다. 오랜 기간 이런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너무 무심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양인은 가정을 중시하고 프라이버시 침해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우리는 승진시켜 주고 돈 더 주면 당연히 말을 잘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에게 휴가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성격을 갖는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일을 그르친다.

시네이=중국의 경우 이런 문제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다. 레전드라는 중국 PC 제조업체가 IBM의 PC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레노버로 바꿨다. 레노버 경영진은 70% 이상이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니다. 네덜란드·베트남·중남미 사람이 섞여 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세계화다.

황=한국 회사 하나가 아일랜드에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마케팅을 현지인에게 맡겼다. 하지만 한국인 상무는 그 사람이 맡은 일에 계속 참견했다. 현지 직원은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시네이=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을 추진할 만한 여유를 주어야 한다. 신뢰와 존경의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황=내가 변호를 맡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2심 무죄판결을 끌어냈던 론스타 사례도 글로벌 스탠더드에선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다. 론스타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 은행을 사서 여론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이득을 본 외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당시 외환은행 주식만 오른 게 아니라 다른 은행 주식도 다 올랐다. 한국은 경제 상황이 나쁠 땐 외국 자본에 관대하지만, 조금 나아지면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신화가 가능한 나라
시네이=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러 영역에서 세계화의 선구자이며 개척자다. 일본은 저가품 생산국에서 렉서스나 소니를 생산하는 데 40년이 걸렸다. 한국은 그 절반밖에 안 걸렸다. 한국 사람은 굉장히 열심히 일한다.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어 그 이상을 추구한다. 물론 중국이 그 기간을 또 얼 마나 줄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요즘 나는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신분 상승이 안 되는 나라였다. 한국은 과거 제도를 통해 신분 상승이 가능했고, 따라서 모두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다. 상고 출신 대통령이 연속 세 번이나 나오지 않았는가. 한국은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다. 신화가 가능한 사회다.

시네이=그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 드림이 바로 그것이다. 코리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 두 나라의 긍정적 변화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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