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가와 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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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 65세인 알프레트 브렌델은 살아 있는 피아니스트 가운데「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체코태생으로 런던에 살고 있는 그는최근 뉴욕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시리즈를 취입하며 베토벤의 음악세계에 또 한 발자국 다가섰다.그의 음악인생은 완성을 모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슈베르트의 내면(內面)세계에 근접하기 위한끝없는 배움의 과정이다.어린 시절 그는 신동(神童)소리도 못들었다.여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진도는 그저 그랬다.11세 때서야 「싹」을 인정받았다.피아노에만 매달 리지 않고 문학서적을 탐독하고 그림도 그렸다.
17세 피아니스트로 데뷔할 즈음 그는 작곡을 하고,그림을 그리고,시(詩)도 썼다.그의 친구 철학자 이사이어 베를린은 『화가나 작가로 나섰더라도 브렌델은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브렌델은 음악과 미술과 문학은 각기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로 보았다.오케스트라 연주와 바리톤의 노래를 들으며 『피아노 연주는 피아노 악기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나 노래속으로 피아노를 몰입시키는 과정』임을 터득 했다.기교보다 음악에 대한 태도를 중시하고 작곡가 앞에 항상 겸허함을 미덕으로 삼았다.『한 악기를 마스터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다음은 연주자의 내면세계다.진정한 재능은 여기서 가름된다』고 그는말한다. 그의 연주는 매번 새롭고 신선하다.연주하는 그의 얼굴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연상케한다.전혀 즐겁지가 않고 마치 신전(神殿)앞에 자신을 제물로 내던지는 순교자의 표정이다.
베토벤의 주된 표현수단은 피아노였다.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111번으로 그의 음악여정(旅程)은 끝난다.끝이라기보다 영원한 침묵으로 빠져든다.
브렌델은 연주가 끝난 순간에도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침묵은 한동안 계속된다.박수가 하나 둘 쏟아지기 시작한다.마치 악보에 있는 것처럼.신동으로 소기속성(小器速成)했다면 오늘의 내면세계는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회고한다.『 즐비한 신동들 틈에 「지진아」가 살아남기는 힘들다.그러나 그 시간이 나를만들었다.내가 잘못됐거나 세상의 음악계가 잘못됐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자녀들의 예술인생을 뒷바라지하는 우리네부모들이 귀담아들어 둘만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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