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4.11총선>1.통합선거法 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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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11총선이 끝나고 15대개원이 다가오고 있다.20세기의 마지막 총선이었던 4.11은 성적표와 상관없이 많은 반성거리를남겼다.실전(實戰)에서 문제된 선거법,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돈선거등.내년에는 대선,98년엔 지방선거등 선거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선거의 건전한 개선을 위해 4.11을 뒤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註] 4.11총선은 바뀐 선거법으로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다.돈은 묶고 입은 풀었다는 산고(産苦)의 자찬(自讚)속에 등장한 작품이 통합선거법.그러나 이 선거법은 실전에서 무수한 하자를 지닌 「불량상품」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중순 국회의사당 소회의실.여야의 선거법 개정협상도중 배석했던 선관위 직원들이 우루루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이들은 『의원들의 흥정으로 선거법이 누더기가 되고 있는 자리에더 앉아 있을 수 없다』며 벌개진 얼굴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때 논란됐던 부분이 바로 현역의원 의정보고회.선관위는선거운동 개시일 1백20일전부터는 의정보고회를 금지하자는 안을냈다.그러나 현역의원들만 모인 여야 협상에서 의정보고회 허용기간은 선거운동 개시일 전까지로 결정됐다.의정보고회 기간은 선관위 안보다 무려 4개월이 늘어났고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신한국당 이성헌(李性憲.서대문갑)위원장은 『선거공고전에는 명함하나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원외에 비해 현역은 하루 수차례의의정보고회를 하는 원초적 불공정 게임』이라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얼굴을 알릴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원외위원장을 뒤로 하고 현역의원들은 무제한 허용된 의정보고회로 사전선거운동을 마음껏 했다.원외위원장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결국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원외의 설움을 딛고 당선된 신한국당 김학원(金學元.서울성동을)위원장은 『15대 국회에선 선거법부터 손봐야 한다』며 『당장무소속과 원외위원장들을 차별한 조항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법중 의정보고회를 둘러싼 불평등 못지않게 논란의 대상이 된게 선거비용 제한액.선거법상 후보 1인당 평균선거비용 제한액은 8천1백만원이다.
중진.초선을 불문하고 당선자중 이 비용을 곧이곧대로 지켰다고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국민회의 손세일(孫世一.은평갑)의원은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며 『사실상규정 따로,현실 따로의 전형에 다름아니다』고 말했다.20억원을쓰면 당선되고 10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20당10락설」이 공공연한 현장과 8천만원이란 법 조항간의 괴리는 너무하다는 지적이다. 낙선한 중부권의 신한국당 K후보는 선거운동을 시작하며통장에 10억원을 예치했다.우선 그는 16쪽짜리 책자용 홍보물3만부를 제작하는데 3천5백만원을 들이는등 홍보물 비용만으로도1억원을 쉽게 초과했다.그는 『투표일을 1주일 남겨 놓고 통장에 남은 돈이 하나도 없어 중앙당에 SOS를 쳤다』고 밝혔다.
그나마 그는 중앙당이 아예 열세지역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더이상의 실탄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강창성(姜昌成.용산)의원은 『돈은 묶고 말은 풀자는 선거법의원칙대신 말과 함께 돈도 풀리고 말았다』고 했다.
정상용(鄭祥容.서초을)의원은 『검찰이 법정선거비용 초과내용을엄격하게 파헤칠 경우 아마 15대 당선자 전원을 범법자로 만들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할 정도다.그는 『선거비용을 2억~3억원으로 현실화하되 대신 단속은 철저히 해 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선거법의 각종 까다로운 규정들도 줄곧 도마위에 올랐다.
신한국당 徐한샘(인천연수)당선자의 경우 『선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선거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고 할 정도다.모호한 법 규정으로 선관위가 일일이 유권해석을 내려야 했고그나마 중앙선관위와 시.도선관위의 해석이 엇갈리 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범법범위를 둘러싼 김밥과 식사,음료와 술의 구분은 선거전 내내 논란거리였다.중앙선관위 선거법안내실은 2만통이란 기록적인 문의전화를 받기도 했다.제주도의 한 야당후보는 4월초께 대학생풍물패들이 선거운동을 돕기로 했다.그러나 지역선 관위는 이를 위법이라며 금지시켰다.중앙선관위가 『연예행위의 경우 전문인이 아닌 아마추어 풍물패 등의 공연은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집을 한참전에 발간했는데도 말이다.
유급운동원 수와 자원봉사자 규정도 이상과 현실간의 격차가 너무 컸다.
『솔직히 밥 한끼도 안 사면 누가 자원봉사를 합니까.드러나게표가 나면 안되지만 다른 후보 하는 만큼은 풉시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3월말 서울의 모후보 지구당사무실에서 40대의 동책(洞責)이란 사람이후보를 다그쳤다.
『법이 그러니 일단 조심은 해야합니다.문제가 안되게 알아서 하십시오.』당장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대개 이처럼 탈법의 유혹에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원혜영(元惠榮.부천오정)의원은 『사실상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정 선거운동원만을 쓰면 운동원들이 안보이니 오만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토로한다.김영춘(金榮春.광진갑)위원장은 『자원봉사자라도 최소한 밥은 사주는 게 우리 정서와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박계동(朴啓東.강서갑)의원은 『당위성이야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조항을 강요해 양성적 지출보다는 음성적 금품사용과 탈법담합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가장 현실에 가까운 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현장의 개정요구 목소리를 정리했 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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