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한반도기류>2.남북한+미국 3각관계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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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0년대 말 북방 정책으로 전방위(全方位)외교의 전성기를 맞았던 한국은 최근의 한반도 주변질서 재편 과정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북한핵 문제다.
한국의 북방 외교 성공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박차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은 한국 외교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독자적 핵 정책을 갖지 못한 한국은 지난 3년간 대북 핵 협상 권한을 미국에 이관할 수밖에 없었다.또 단순한 지역 문제가아닌 핵 문제로 인해 그동안 무시하던 북한과 마주앉게 된 미국은 점차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새 로운 대(對)한반도 정책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탈 냉전시대 동북아 질서 재편에 주요 고려 대상으로 북한이 미국의 정책 시야에 진입한 것이다.
한편 탈 냉전시대 사회주의권 붕괴로 우방을 잃은 북한은 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에 처하게 되었고 식량난까지 겹쳐 「주민 생존」의 부담을 안고 있다.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 자체를 미국이 대한반도 정책에서 주요 관심사로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또다른 아이러니를 창출한 것이다. 북한과 각종.각급의 협상을 벌여온 미국은 익숙지 않은 북한의 협상 행태와 「벼랑 끝」 전술에 휘말려 상당기간 대북 정책의 혼돈을 거듭했고 강경과 온건,대외 정책의 원칙과 예외 사이에서 대북 정책의 갈피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난관에 처한 북한의 선택 혹은 북한 지도부조차 걷잡을수 없는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미국내 다양한 대북 정책 논의를 수렴하는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점차 「접촉을 통한 변화 유도」라는 포용정책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북한의 어려움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있어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준 셈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대한(對韓) 안보동맹과 밀도있는 경제 관계로 인해 북한에 치우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북 관계가 대 남한 관계의 연장선에서 논의되는 관행으로부터 점차 탈피하고 있는 현상이다.
미 고위 관리들이 동북아 정책을 논할 때 한반도 평화와 역내안정을 강조하는 속 뜻이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정세를 묵시적으로 인정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미국은 말 뜻 그대로 「한반도통일」에 앞선 시급한 정책과제로 「남북간의 평 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의 비관적 장래,남북간 벌어지는 국력 격차와 관련해 미국은 통일 이후 한반도 주변의 역학 관계를 염두에 둔 대 남북한관계 구도를 현 시점에서 심각하게 논의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해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소위 「북한 이후의 정책」(Post-North Korea Policy) 모색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한국의 국내 정치에 볼모가 된 대 한반도 정책은 더 이상 미국의 국익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미국의 계산은 남북한과 미국이 이루는 「한반도 삼각관계」(Korean Triangle)의 성격 변화를 분명히 예고하고 있다.
한미 정상의 4자 회담 제의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던 한.미 정상의 4자 회담제의는 남북 대화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두 궤도간의 연계를가급적 유연하게 유지하며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미국의 선언」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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