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리믹스 영화 ‘다찌마와리’ 70년대 한국식 첩보액션 흉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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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새 영화 ‘다찌마와리’(14일 개봉·사진)는 어쩌면 ‘놈놈놈’보다 한결 도전적인 영화다. ‘놈놈놈’이 한국형 서부극이라는 잊혀졌던 장르를 21세기 최신 트렌드로 소화한 반면, ‘다찌마와리’는 이제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1960~70년대 한국식 첩보액션물의 관습을 일부러 흉내 낸다. 문어체 대사를 후안무치하게 100% 후시녹음의 과장된 억양으로 들려주고, 100% 국내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는 전 세계를 자유로이 오간다. 예컨대 한강임이 분명한 배경에 ‘두만강’이라고 자막을 입히거나, 강원도 스키장을 알프스 설원으로 등장시키는 식이다.

영화의 부제인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왕년의 액션스타 박노식이 주연·감독한 1976년도 영화에서 따왔다. 하지만 이를 리메이크한 것이 아니라 그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를 빌려왔다. 때는 1940년대. 황금불상에 적힌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명단을 탐내는 일제와의 대결구도가 핵심 줄거리다. 첩보물·서부극은 물론이고 심지어 무협물까지 고루 뒤섞인다. 주인공인 협객 다찌마와리(임원희)가 기억상실에 걸렸다가 무예고수로 거듭나는 과정은 굴욕과 수련을 거쳐 영웅이 탄생하는 무협물의 전형성 그대로다. 영화 전체가 의도적인 촌티와 허술함을 풍기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지만, 이 대목의 액션은 그 자체로 쾌감을 안겨줄 만큼 뛰어나다. 장르를 옮겨다니다 보니 약점도 있다. 줄거리가 다시 복고풍 첩보물로 돌아오는 대목에서는 정서적인 이질감이 느껴진다.

패러디 유머나 요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유머도 시도한다. 중국어·일본어 같은 외국어 대사를 엉터리로 소화하면서도 정직한 자막을 붙여 충돌의 맛을 내거나, 심지어는 자체적으로 외화나 미드의 자막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네티즌들의 관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다찌마와리’란 과거 국내 영화계에서 격투장면을 이르던 일본말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류승완 감독이 동명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2000년 인터넷으로 개봉해 큰 인기를 누렸다. 패러디 영화라면 차라리 더 익숙할 테지만, 이 리믹스 영화를 즐기는 데도 일정한 취향이 필요하다. 영화가 의도한 유머 중에는 허탕으로 끝나 전혀 웃기지 않는 대목도, 웃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만큼 원초적 웃음을 자극하는 대목도 있다. 취향에 따라 만족도가 나뉠 가능성이 퍽 크되, 대놓고 촌티를 구사하는 이 코믹액션물은 애증의 대상으로서 과거 한국 장르영화의 특징을 최신 스크린에 다시 불러낸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다찌마와리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성첩보원으로 박시연과 공효진이,‘국경살쾡이’라는 이름의 불한당으로 류승범이 출연한다. 12세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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