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쌀시장 협상, 실패 되풀이 안 되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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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쌀시장 개방에 대한 재협상이 다음달 시작된다. 미국.중국 등 쌀 수출국 6개국과의 협상을 연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시장개방을 일정 기간 다시 미루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개방을 미루더라도 의무 수입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식으로 개방유예의 대가가 지나칠 경우엔 관세화를 통해 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게 더 이익일 수도 있다.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무조건 개방유예를 주장하지 않고 보다 국익을 보호할 수 있는 결과를 노리는 실리적 접근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타당하다.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내 쌀농가에 미치는 피해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대외협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두달 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정에서 나타났던 농민의 거센 반발이 이번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민을 설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농업경쟁력 강화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농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쌀시장 개방이 처음 논의된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10여년 동안 정부가 농촌에 수십조원을 지원했지만 농촌 사정은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탁상행정.전시행정에 치우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10년 동안 119조원을 들여 농촌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연초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도 농촌 반응이 시큰둥한 것이다.

정치권도 쌀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야 한다. 칠레와의 FTA 비준 때처럼 지역정서와 표만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자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게 정치권의 의무 아닌가. 그래야 농민에게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농촌이 살아갈 방책을 찾아내는 데 머리를 맞대자고 말할 수 있다. 농민단체와 정치권, 정부가 3자 합의를 통해 쌀 관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충격을 최소화한 일본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