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北風'에 끄떡않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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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거후 며칠이 지나도록 국민회의측이 이른바 「북풍(北風)」을원망하는 모습은 보기가 딱하다.국내정치에 미치는 북한의 영향이얼마나 큰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김대중(金大中)총재는 어떤여론조사를 들어 「장풍(張風)」이 선거에 6 %의 영향을 미친데 비해 북풍은 30%의 영향을 미쳤다고까지 주장했다.이 말대로라면 북한은 우리의 국내정치에 대해 칼자루치고는 큰 칼자루를쥐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그러나 국내 정치상황에서 북이 특정정당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들 힘이 있고,더구나 그런 힘이 매우 크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럴 경우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우리쪽에서 북한에 잘보이려는 정치세력이나 정치행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북한의 그런 힘에 그냥 놀아날게 아니라 우리대로 뭔가 대책을 강구하고 방어하는 장치를 가지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우리가 북한에 지금은 선거철이니까 조용히 있으라고부탁할 처지도 아니고 보면 북한의 칼자루를 무력 화(無力化) 또는 최소화(最小化)시킬 방도는 우리 내부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우리가 북한문제에 관한한 내부적으로 철통같이 단합하고 초당적(超黨的) 협력체제를 굳히고 있다면 북풍이 제아무리불어도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그렇지 않고 북풍에 대한 반응과 해석이 제각각 다르고 국론(國論)이 흩어지고 국민 이 갈팡질팡하게 된다면 사소한 북풍도 우리를 폭풍처럼 흔들 수도 있을것이다. 따라서 열쇠는 우리 내부에 있다.북한의 판문점 무력도발이 선거에 그토록 민감한 영향을 준 것은 우리에게 아직 안보에 관한 초당적 협력체제도,정당들의 성숙하고도 확고한 자세정립도 덜된 탓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거철이라 하지만 안보문제는 표(票)이상으로 중요하다.선거의 호재(好材).악재(惡材)차원일 수가 없다.판문점사태때우리 정당들도 처음엔 입을 모아 북한을 규탄했지만 곧이어 호재.악재론으로 문제를 평가절하했다.판문점에 그런 일이 벌어진 사태초기엔 최소한 북한규탄.장병격려.국민단합 촉구에는 여야의 목소리가 일치했어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이런 도발이 있으면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우리 내부가 한 뜻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일 수있어야 한다.국민을 위축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할 어떤 불필요한 언동도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이 잘못돼 이런 결과를 빚었다는 비판은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안보문제에 관해 이처럼 여야를 가릴 수 없는 대응을 보인다면북풍이 분다고 금세 야당성향의 유권자가 여당으로 기울어지는 동요는 미미할 것이다.가령 야당지도자가 이번에 또는 평소에 『유사시엔 이 늙은 나도 총잡고 나가 싸우겠다』고 했다면 북한이 찔끔했을건 물론이고 그런 야당에 대해 북풍이 상처를 입히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안보가 여당의 전유물(專有物)일 수는 없고,그래서도 안된다.
어느 나라든 안보에 관해서는 초당적 협력체제가 돼야 하고 우리에겐 더욱 절실하다.
***정보와 감각 여야共有 필요 그런 협력체제를 만들어낼 책임은 정부.여당에 더 있다.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 정부도 중요안보사항이 발생하면 즉각 야당지도자들에게도 통보하고 대응방안을협의하는 관행을 만들어나가야 한다.평소에도 안보사항에 관해서는여야가 일정한 범위에서 정보와 감각을 공유(共有)하고 비상시엔말 몇마디로 서로 의사소통이 될 수 있어야 한다.이처럼 안보에여야가 없음을 국민 누구나 알게 되면 북풍이 불어도 유권자가 흔들리는 현상이 크게 줄어들 것은 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엔 아직 이런 협력체제가 돼 있지 않다.정부의 정보독점과 야당의 원론적 비판이 있을 뿐이다.정부로선 기밀누출을 염려할지 모르나 안기부를 다루는 국회정보위의 경험을 보면 야당의 보안유지도 믿을 때가 됐다.
북한이 우리의 국내정치에 칼자루를 쥐지 못하게 하고,북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우리 내부의 태세 확립이 절실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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