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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코리안 에너지’로 서비스업 키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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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22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기업가들이 다시 저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갖고 있는 미 조지타운대 칼 달먼(국제관계학·사진)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하면 된다’는 근성을 복원해야 할 시점”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가진 자’들이 책임 의식을 갖고 앞장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국가경쟁력 분야 ‘세계적 석학’ 칼 달먼 조지타운대 교수

-세계 각국이 경쟁력 높이기에 혈안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선 미국을 보자. 로마에 비견되던 미국이 지금 완전히 그로기 상태다. 가장 경쟁력 있다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 이렇게 휘청거릴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미국인 10명 중 8명이 미국이 몰락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은행은 무너지고 달러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유럽국가는 물론 아시아 신흥국가들도 미국의 지배력을 공공연히 비웃기에 이르렀다. 이제 ‘지속가능한 경쟁력(sustainable competitiveness)’은 글로벌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 같은 강대국이 그렇다니 할 말이 없어진다. 경쟁력 관점에서 한국의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문제부터 건드려 보자.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황당한 나라가 한국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학 이수율은 4위로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대학의 경제사회요구 부합도’는 조사대상 55개국 중 53위로 꼴찌 수준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학교육 부문에서 싱가포르는 1위이지만 한국은 40위로 역시 바닥이다. 기형적으로 낮은 교육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맥이 풀린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다. 정원 규제 등 사립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부 간섭은 지나치게 억압적이다. 수재교육이 무시되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지나치게 평등에 집착하면서 세계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얘기하는 것은 상호모순이 아닌가. 한국의 교육시스템 아래선 경쟁력을 견인할 창조성(creativity)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요인들도 나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렇다. 특히 중국의 부상은 한국의 경쟁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세계경제에 편입된 중국경제는 최근 GDP와 무역규모에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는데, 특히 제조업에서 한국과 겹치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다. 글로벌 경제 상황 변화에 대해 한국 정부가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정부 규제는 여전히 지나치며 공기업들도 방만하다.”

-한국경제의 성장 돌파구는 어디서 열어야 하나.
“삼성이나 현대 등 훌륭하게 성장한 제조업에 이어 서비스산업을 서둘러 키워야 한다. 한국의 경제 성숙도에 비해 서비스업은 너무 낙후해 있다. 선진국의 경우 GDP의 72%가, 미국의 경우 75%가 서비스업에서 창출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식기반 경제시대(knowledge-based economy)에서는 더욱 서비스업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아닌가. 콘텐트가 중요하다. 지식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왔다.”

-긍정적인 얘기를 좀 듣고 싶다. 한국의 장점은 없는가.
“사람이다. 한국인들의 진취적인 성향을 강조하고 싶다. 계량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른바 ‘하면 된다’는 결의가 오늘의 한국을 일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무모하리만큼 넘치는 에너지에 늘 감탄한다. 한국에는 잘 교육받은 사람들(highly educated people)이 많았다. 과거 개발시대 한국의 대통령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병철·정주영으로 대표되는 기업가 정신도 한몫했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맞다. 기업가들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 본받을 대상이 되기보다 죄인 취급을 당할 때가 많다.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인들의 도덕 불감증도 크게 작용했다. 부유한 기업인들의 모럴 해저드가 전체 국민에게 나쁜 이미지를 줬다. 가진 자들의 오만이 존경의 대상인 기업가 정신을 흔들고 있다. 많은 한국인은 경제가 다시 좋아지더라도 그 과실이 가진 자들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도 문제다. 양극화는 이제 도를 넘었다.”

-한국이 금융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금융 경쟁력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일단 방향은 잘 잡았다. 금융 시스템은 중요하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결국은 금융의 힘이 필요하다. 한국처럼 벤처기업이 활발히 등장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금융이 뭔가. 돈이 보다 효율적으로 할당되고 또 투자되도록 만드는 물꼬가 금융이다. 최고경영자(CEO)의 감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경영의 시대는 지났다. 리스크를 줄이고 고수익을 기대하려면 금융 지향적인 경영이 필수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은 이 부분이 취약하다. 한국의 금융산업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의 금융이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달먼 교수는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한 뒤 “너무 비관적인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시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한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가. 지난 20년간 스무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해 온 자칭 타칭 한국 전문가인 나도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역동성에 놀라고 또 놀란다. 그게 한국의 힘이다.”


칼 달먼(54) 교수는
스웨덴계로 국적은 콜롬비아다. 프린스턴대를 거쳐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은행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3년 전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경쟁력 연구에 관해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신흥국가들의 경쟁력에 관심을 갖고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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