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美 과학고 한국어반 살려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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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렵사리 시작한 한국어 교육이 1년 만에 중단된다는 얘길 듣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제이윈(Jwin)이라는 전자업체를 경영하는 저스틴 김(42)사장이 최근 뉴욕 브롱스 과학고등학교의 한국어반 운영에 필요한 1년치 예산 3만6000달러를 내놓았다. 이로써 학생들은 오는 9월부터 중급 및 고급반에서 한국어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金사장은 "이번에 지원한 돈은 1년치 운영비"라며 "앞으로 5년간은 운영을 책임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인 브롱스 과학고는 2700명의 재학생 중 약 20%가 한인 2세들이다. 1938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졸업생 중 다섯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 학교의 한인 학부모들은 지난해 9월 1만5500달러를 모아 한국어반을 개설, 현재 24명의 한인 2세들이 하루 한시간씩 수업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중급 과정이 끝나면 9월 새학기부터 고급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예산부족으로 수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한인 부모들이 중급반 유지 및 고급반 신설에 필요한 모금 활동에 착수했고, 이 소식을 들은 金사장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뿌리"라고 말하는 金사장은 "앞으로 한인 사회를 짊어질 학생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배우는 한국어 교육은 더욱 장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어 교육이 미국서 자라나는 2세들에게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대학 진학에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말을 쓰는 부모들의 영향으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할 경우 성적 관리가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브롱스 과학고에는 현재 한국어 외에 일본어.이탈리아어.그리스어 등 7개의 외국어반이 개설돼 있는데 대부분 자국 기업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金사장은 일본어 교육을 적극 후원하고 있는 소니사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니의 경우 일본어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학생들이 나중에 대학을 졸업한 뒤 입사를 원할 경우 가점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회사를 더욱 성장시켜 이런 꿈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 퀸스의 우드사이드에 있는 제이윈사는 MP3 플레이어.TV.오디오 등 각종 전자제품을 만들어 제이윈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미국 내에서 시판하며, 남미 등으로 수출도 한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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