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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고인 지상에 천국은 가능한가, 끝없이 묻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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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06면

1993년 4월 중순 김치찌개와 곱창구이를 하는 허름한 술집에서 소설가 이청준씨와 임권택 감독이 만났다. 계절은 바야흐로 봄 사월, 꽃바람은 산들거렸으나 30여 년의 군사정권을 끝내고 막 들어선 김영삼 문민정부가 내리치는 개혁의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 시국이었다. 국민은 이씨의 소설을 임 감독이 영화로 옮긴 ‘서편제’의 한스러운 이야기와 영상, 그리고 소리에 대책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당신들의 천국’작가 이청준의 삶과 문학

대종상 6개 부문을 휩쓸며 관객을 끌어들이고, 서점가에서는 원작소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서편제』의 집필과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한 그 술자리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작품으로 보여줄 뿐 그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는 뒷얘기가 없어야 장인(匠人) 소릴 듣는 것인가. 서로 그 작업에 대해 “징하요, 징해”라는 동향(同鄕) 사투리만 간간이 내뱉으며 소주병을 비워 갔다.

소주가 몇 병째 비워지자 두 사람은 드디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단과 영화계에서 눌변으로 정평이 나 있던 양반들이었지만 그날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는 청산유수였다. 임 감독이 먼저 운을 뗐다.

“78년도엔가 잡지에 발표된 이 선생의 작품을 읽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그 불쌍한 오누이의 연정(戀情)이 구슬픈 소리 한 자락처럼 가슴을 치고 들어오며 우리네 삶의 근원을 건드리는데, 영화화에는 당최 자신이 서질 않았어요. 원작의 깊이와 격조를 떨어뜨릴까 봐. 그래 15년 만에야 이 선생을 괴롭힐 정도로 물어 물어 가며 완성했지요.”

임권택 “징하요, 징해”
“임 감독의 그런 철저한 작품 재해석 과정이 경탄을 넘어 징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데요. 민족의 삶과 한이 예술로 승화된 소리를 소설로 파고들며 예술의 참된 정신을 캐 보려 했지요. 삶 가운데 쌓이고 맺힌 아픔과 고뇌가 한 아니겠어요. 그것을 풀지 못하면 원한이 되고요.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푸는 것이 우리네 삶의 깊이이고 진정한 한의 미학이고 소리 아니겠어요.”

두 장인은 한을 풀어 주고 인간성을 되찾게 하는 참된 예술정신으로 의기투합해 이후에도 ‘축제’와 ‘천년학’ 작업을 같이하며 우리 시대의 한을 우리 식으로 풀며 인간의 품위와 함께 신명을 지펴 갔다. ‘서편제’에서 누이가 소리를 하면 북으로 숨구멍을 터 주는 오라버니처럼 둘은 이 부박한 삶과 값싼 대중문화 시대 우리네 삶과 문화의 격조를 대중 속에 활자와 영상으로 불어넣었다.

우리 시대의 고향이었던 이청준
지난달 31일 타계한 이청준의 빈소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작품은 물론 이씨 자체가 고향처럼 느껴졌다”고 했고, 그런 고향을 잃은 허허함에 영정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임씨의 화보 기사가 인터넷에 올랐다.

그렇다. 이청준의 문학은, 이청준이라는 인간은, 우리 시대의 고향이었다. ‘4·19세대 작가’ ‘한글세대 작가’ 또는 ‘지식인 소설’ ‘관념 소설’ 등의 범주 속에 그와 그의 문학을 가두기에는 그 통과 품이 너무 크고 넓다. 남북 분단과 독재에 이은 4·19, 그리고 5·16과 유신독재에 이어진 신군부와 광주민주화운동, 그러고서 맞은 문민·국민·참여 등등의 민주화 정권에도 결코 휘둘리지 않은 인사와 문학이 이청준이다. 풍상에 꺾이지 않고 꿋꿋이 서 고향을 끝끝내 고향으로 지키고 있는 우리 시대의 당산나무 같은 존재가 이청준이고 그의 문학이었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아라…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단편 ‘눈길’의 한 대목이다. 살림이 거덜나 집까지 팔았으면서도 도회지로 유학 간 아들에게는 그걸 숨기고 그 집에서 저녁 한 끼 지어 먹이고 동네 사람 몰래 새벽 눈길을 바래다 주고 오는 어머니의 이 같은 심경을 읽으며 독자들 눈시울 또한 젖어 들었으리라.

무지렁이 가난이 한이 되어 개발시대에 얼마나 많은 부모가 전답 팔고 집 팔아 자식들을 도회로 유학 보냈던가. 남에게 꿀릴까 봐 자식에게 그 가난을 숨기고, 또 얼마나 많은 자식은 제 잘난 체 그런 부모들의 가난을 원망했던가. 그런 아비와 어미 마음이 이 작품에서 여전히 냉랭한 자식을 감화하고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눈길’은 그런 이 땅 어머니들의 한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며 우리네 삶의 뿌리를 들여다보게 하며 서로의 가슴속 깊숙이에서 화해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청준 문학의 시작이고 끝인 한풀이, 현실에 지친 영혼을 위무하며 인간의 깊이를 지키게 하는 고갱이다.
삶과 사회의 본질 천착한 근원주의 문학

작가가 76년 발표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유신체제인 당시의 시대상황을 넘어서서 지금까지 114쇄나 찍히며 읽히고 있는 현대의 고전이 됐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센병원 원장과 환자들의 갈등과 반목, 협동과 음모 등을 그리며 이 지상에서 천국은 과연 건설될 수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다각도로 묻고 있다.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보편적 질문 덕에 오늘의 젊음에도 읽히며 참다운 인간세상을 위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그 참상과 진상을 고발하는 르포나 작품이 나오기 시작할 때 이청준도 작가로서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를 아우르는 전남 출신 대표 작가인 자신의 침묵에 쏟아지는 비난을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끝끝내 문학의 고향을 지켜냈다. 물론 영화 ‘밀양’으로 각색된 ‘벌레 이야기’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용서는 가능한지를 물으며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청준의 문학은 동시대의 현실을 꿰뚫어 보면서도 그것을 직접 드러내는 현실주의 문학과는 다르다. 그의 소설에서 분단이나 독재·폭력 등은 고발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로 다루어진다. 그의 소설들은 대개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담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며 양파 벗겨 나가듯 삶과 사회의 본질을 천착해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현실적 삶에 당하고 지친 우리네 영혼을 위무한다.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갈 시대의 일들은 크고 작음, 곱고 미움, 선하고 악하고 가릴 것 없이 각기 그 값대로 받아들여 함께 감내해 가야 할 엄연한 우리 몫의 실체입니다. 이승의 삶에서 장애나 고통을 피해 갈 수 없을 바엔 차라리 그것을 끌어안고 삭여 나가는 지혜, 나는 그것을 한의 본질이자 미덕으로 봅니다.”

지난 20여 년간 선생을 접하며 들은 ‘이청준 문학관’의 요체다. 한을 서로 나누는 영혼의 감동, 한을 풀어 주는 신명 난 삶으로 쓰인 작품들이 『서편제』요 『천년학』이요 『축제』요 그의 거개의 작품 아니던가.

이 시대, 이 땅의 작가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며 이씨는 작품만 썼다. 이 상 저 상 기웃거리지 않아도 상을 타고, 집안 대소사 있을 때마다 책을 셀러로 만들어 주는 문단과 독자가 있으니 어찌 작가로서 만족스럽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씨와 함께 그런 독자가 있는 한국문학은 건강하고 행복했다.

단 하나,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큰 상의 작품 심사 의뢰가 들어와 성가실 텐데도 그는 짐짓 신춘문예 심사만큼은 청탁하곤 했다. “요즘 세태와 젊은이들의 경향을 알기 위해서”란 어눌한 말을 붙여 가며. 그만큼 이씨는 동시대와 젊음과 호흡을 같이하려 했다. 아니 그것을 꿰뚫어 나가며 삶과 사회와 문학의 본질을 지키려 했다.
몇 해 전 이씨와 함께 그의 고향 전남 장흥을 둘러보았다. 이씨가 유년 시절부터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천관산에도 함께 올랐다. 다도해로 떨어져 내리는 남도 끝자락의 명산답게 그 산은 제 속살 같은 흙과 수림, 그리고 의지 같은 돌들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흙으로만 주로 이루어진 산 능선은 강아지 등같이 부드러워 쓰다듬어 주고 싶으나 너무 여리다. 바위로만 이뤄진 산은 위엄은 대단하나 매정해 정들이기 힘들다. 흙과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져 올라가다 꼭대기에서는 기둥 바위들로 다도해 빛 하늘을 이고 있는 천관산은 그가 길러낸 이청준이라는 인간과 그 문학의 살가움과 끝간 데 없는 깊이, 그리고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될 참된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한 의지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제 이청준은 그곳으로 들어가 그 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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