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카페] 세계경제 무너진다 … ‘황금’을 챙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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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화폐전쟁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랜덤하우스, 512쪽, 2만5000원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실체는 미스테리다. 누가, 무엇 때문에 암살했는가를 둘러싸고 온갖 음모론이 아직도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음모론에 가담한다. 암살의 배후엔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국제금융재벌이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 근거를 생뚱맞게도 케네디가 암살 5개월 전에 발표한 ‘대통령령 11110호’에서 찾는다. 대체 이게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미국 화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이 발행하는 달러다. 미 정부가 돈을 쓰려고 해도 FRB에서 달러를 빌려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민영이다. ‘사실상 주주’들이 JP모건 등 민간은행이다. 그래서 미 정부의 숙원 중 하나가 직접 화폐발행권을 갖는 것이었다. 그걸 케네디는 대통령령 11110호로 해결하려 했다. 정부 보유 은괴를 담보로 미 재무부가 직접 은 증서를 발행, 화폐로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FRB의 달러 화폐가 은증서라는 화폐에 밀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달러 발행권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재벌 입장에서는 경제주도권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이게 국제금융재벌이 배후라고 주장하는 논거다. 케네디를 승계한 존슨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은증서 발행을 중지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덧붙이면서.

지은이는 링컨 대통령 암살(1865년)과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1981년)도 국제금융재벌이 배후라고 주장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29년 대공황, 1970년대 1·2차 석유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위기 등도 이들의 음모와 책략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얼핏 보기엔 황당하다. 세계가 수백 년 동안 국제금융재벌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책을 매도하기도 어렵다. 지은이가 음모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한 역사적 사실들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간 노력했다는 저자의 설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사실(fact)에 근거한 소설(fiction), 즉 ‘팩션’(faction)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책이다.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도 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라는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업체의 위기를 이 책은 진작부터 전망했다. 서브 프라임 등의 파생금융상품시장의 위기도 예측했다. 모두다 지금의 미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달러체제의 위기를 전망한다. 세계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을 것이란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사실 미국의 국채 발행량이 8조 달러가 넘는 상황에서 달러가 지금처럼 세계의 유일한 기축 통화로 작동하리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재산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세계경제시스템은 오래도록 버틸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문제는 대비책이다. 지은이는 “당분간 지속될 광란의 파티는 즐기되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해 항상 출구쪽에 서 있으라”고 충고한다. 경제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출구는 현금이다. 실물자산을 현금화하라는 얘기다. 지은이가 말하는 출구는 황금이다. 하긴 현금이나 황금이나 다 같은 얘기다. 재미있게 읽으려면 첫 장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그러나 뭔가 교훈을 얻으려면 9장부터 읽는 게 좋겠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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