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자반고등어' 김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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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봄날의 설렘은 여자의 나이를 묻지 않는 법이다.「일용엄니」 김수미가 모처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야한 옷」을 차려입고 따스한 햇살아래 포즈를 취했다.
『드라마 전쟁중이에요.친정격인 MBC가 사운을 걸고 만든 「자반고등어」 홍보를 위해 무리 좀 해봤어요.』 평소 꾸밈없는 성격 그대로다.일일극을 놓고 방송사간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자신이 출연중인 드라마가 아직은 열세에 몰리고 있는현실을 그는 못견뎌했다.
『단순한 홈코미디가 아니고 슬픔이 묻어나는 드라마입니다.홀아비와 과부,어버이와 자식간의 갈등이 제대로 녹아나는 다음달부터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자반고등어」앞에 고정시켜 놓을 거예요.』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은 건강식품을 파는 과부 「행자」.짧은 가발에 튀는 의상으로 쌍화차 한잔,녹즙 한잔이라도더 팔아보려다 아들에게 면박받기 일쑤다.애교덩어리 카페마담으로변신한 김혜자와는 홀아비를 놓고 사랑싸움도 치열하다 .
『시청자들이 「화순이」「일용엄니」보다 「행자」를 더 기억하게될 거예요.』 70년 MBC 탤런트3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올해로 26년.영화와 연극 각 한편 출연,세권의 책 출간,레코드 취입까지 연기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대충 다 해봤다.최고연기자에게 주어지는 연기대상도 받아봤다.장성한 두 아이와남편의 사업도 순조롭다.일견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외양과 달리 그의 속내에선 뜻밖에 짙은 허무가 배어나왔다.인터뷰중 그가간간이 돌아보는 시절은 「1백50원하던 분유 살 돈이 없어 포목행상에 나섰던 신혼초」였고 「불면의 밤을 하 얗게 새우며 메웠던 수백장의 원고지」였다.
그는 지금 『많이 고독하고 적당히 배부르다』고 했다.여자나이40대 후반.일과 가정에서 웬만큼 성취감을 맛본 뒤에 찾아든 고독이다.그는 그것을 『배고플 때의 허무보다 더 절실한 허무』라고 불렀다.드라마 한편이 끝날 때마다 성취감보 다 더 독한 갈증을 먼저 느낀다.그래서 연기는 그에게 떠나선 살 수 없지만마셔도 마셔도 배부르지 않은 공기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연기는 쇼가 아닙니다.멋있게 포장만 하기보다 사람 냄새가 나야죠.삶의 고독과 갈증같은 것들,그리고 많은 생각이 좋은 연기를 만드는 것 아닌가요.』 「사람연기론」을 털어놓은 그가 반평생 연기생활동안 얻은 것도 「사람」이다.『자반고등어』의 작가김정수씨와 서로 눈빛만 봐도 모든 것을 안다는 오랜 동료 김혜자는 그가 부러워하는 삶의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다.그는 이들을「연예계에서 얻은 재산」이라 부른다.풀리지 않는 목마름을 준 것도,그 갈증을 풀어주는 것도 연기일 수밖에 없는 연기자 김수미.차라리 그에게 연기란 평생을 짊어져왔고 또 이고 갈 업인지도 모를 일이다.
글=이정재.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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