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上> 미분양에 45조 꽁꽁 … 30% 싸게 ‘세일’해도 안 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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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 들어서는 분양 물량이 200가구로 줄었다. 지난 2년간 분양한 6000가구 중 약 2000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자 회사 측이 사업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미분양으로 계약·중도금이 한 달 평균 100억원씩 들어오지 않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건자재 값이 뛰면서 돈을 빌리는 일도 늘었다. 2005년 160% 수준이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246%로 상승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직원 월급을 몇 달째 못 주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종균 부회장은 “온갖 확인되지 않은 흉흉한 소문이 떠돌 정도로 건설업체의 위기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 오리역 인근 모델하우스들이 ‘선착순 분양’ ‘특별 분양’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다. [사진=최정동 기자]

◇‘3중고’에 시달려=건설업계는 ▶미분양 증가 ▶건자재 값 급등 ▶자금난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미분양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만큼 심각하다. 정부의 미분양 공식 통계는 13만 가구 선이다. 하지만 업계는 드러나지 않은 미분양을 모두 합치면 25만 가구에 달하고, 여기에 잠겨 있는 돈이 45조원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건설업계가 한 해 벌어들인 매출(166조원)의 27%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특히 지난해 미분양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업체들이 정부 규제(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분양 물량을 대거 쏟아내면서 미분양이 한 해 52%나 늘었다. 정종균 부회장은 “여러 곳의 사업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미분양이 쌓이는 바람에 돈 흐름이 끊겼다”고 말했다.

미분양을 줄이기 위한 업계의 몸부림은 공교롭게도 돈줄을 더욱 마르게 하고 있다. 업체들이 분양 조건을 완화하거나 분양가보다 20~30% 싼 가격에 ‘땡처리’(덤핑 처분)에 나서면서 수입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건자재 값 급등은 이 같은 어려움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대표적인 건설자재인 철근 값은 올해 초 t당 63만1000원(10㎜ 고장력 철근)에서 이달에 103만1000원으로 61% 뛰었다. H형강은 같은 기간 t당 48만원(60%)이 올라 현재 120만원 선이다. 이로 인해 자재 값이 5% 정도 더 들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공사비가 1000억원 정도 드는 서울 500가구짜리 아파트 사업지라면 자재 값만 25억원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게다가 대형 업체들이 주택사업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건축·토목공사 수주를 늘리면서 중소업체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형 업체의 건축·토목공사 수주율은 2005년 62.6%에서 올 4월 73.2%로 상승했다.

금융권의 대출 문턱도 높아졌다. 금융권은 건설업체 대출 부실을 우려해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한 중견업체 자금담당 임원은 “금융회사가 자금 회수에 나서기 시작하면 건설업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형 업체도 안심 못해=그나마 대형 업체들의 사정이 낫다. 현대건설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2883억원)은 상반기 사상 최고 실적이다. GS건설도 영업이익 2447억원, 매출 2조9864억원으로 최고의 실적을 냈다. 대형 업체들은 주택사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업체도 적지 않은 미분양을 안고 있다. 특히 3~4년 전부터 지방에 대거 진출하면서 업체별로 지방에 5000~7000가구씩의 미분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B사는 올 상반기 회계장부상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미분양에 돈이 묶이면서 실제 현금 흐름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미분양이 장기화하고 주택에서 들어와야 할 자금이 줄어들면 대형 업체들도 어려움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조철현·황정일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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