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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문 스티븐 린튼 미국 유진벨재단 이사장 見聞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북한의 최근 식량 부족은 어느 정도인가.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미국 민간구호기관 책임자로 지난달 20~24일 북한을 방문했던 스티브 린튼 유진벨 재단 이사장은 북한 사회가 「총체적 궁핍 상태」라고 전했다.
19일 워싱턴에서 북한 식량사정 설명회를 가진 린튼 이사장은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고 79년부터 지금까지 8차례 북한을 다녀왔으며 김일성(金日成)도 3차례나 만났던「한국통」이다.
다음은 그의 견문기 요지.
북한에는 지난해 수해 이후『30년대 고난의 행군 정신을 되살리자』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김일성의 빨치산 활동 당시의 어려움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북한이 현재 최대 시련기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하루 수십명씩 굶어죽는다는 소문도 있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아프리카같은 기아민들은없다.북한의 식량난은 사회 전체가 극도로 궁핍해진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전기도,연료도 없다.농촌에서 볍씨를 발육시킬 보온 못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비닐을 구할 수가 없다.학교는 땔감이 없어 난방이 안된다.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감기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못먹고 못입는 것이 원인이다.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학생들의 출석률은 30%에 불과하 다고 북한 관리들은 밝히고있다. 북한의 실상이 제대로 세계에 알려지지 않는데는 동아시아특유의 문화적 특성도 작용한다.북한 사람들은 국제기구 직원들이현장을 답사할 때 굶주리고 있어도 깨끗이 청소를 한 채 굶는 티를 안낸다.겉으로 봐서는 멀쩡하다는 생각이 들 정 도다.이러다보니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난민에 비해 심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북한 당국은 뾰족한 묘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외부로부터 손길이 없으면 앞으로 상당한 희생자가 날 것이다.그런데도 북한 군부가 원조를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북한은 국제적 도움을 구하면서 1백5 0억달러의 지원을 요청했다.그러나 국제기구의 목표 모금 규모는 그 1천분의1인 1천5백만달러였으며 실제 걷힌 돈은 5백만달러에 불과하다. 구호사업을 위해 개설된 국제기구 사무소는 4곳에 불과하다.그러나 국제기구 종사자들은 현장 답사를 위해 북한 곳곳을 다니고 있어 폐쇄적인 북한 군부는『받는 것도 없이 서방인들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니 북한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불만이 다.북한에 전달된 지원품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여지느냐에 대해 의심이 많지만 본인은 잘 처리되고 있다고 본다.
북한에는 외부 지원물품을 나눠주는 곳이 1백90군데다.분배가무리없이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북한 식량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같은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북한의 실상은 국제기구의 평가가 정확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기아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이다.현재 기아에 시달리는 어린이는 2백10만명,임산부가 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워싱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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