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100년의 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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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20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감시를 받는 사람들은 (미국에) FBI보다 더 큰 위협이다.”

보수주의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1980년 대선 과정에서 FBI의 정치 개입과 전화 도청 논란이 격해져 ‘FBI 축소론’이 나온 데 대한 반격이었다.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 후 FBI와 미 중앙정보국(CIA)을 냉전시대 해체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연방 경찰과 정보기관 기능을 겸한 FBI는 전 세계 수사기관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하지만 FBI와 CIA는 7년 전 알카에다의 9·11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41년 진주만 공격의 징후를 놓쳐 미 정보기관들이 곤경에 빠진 역사를 연상케 했다.

FBI의 100년 진화 과정은 미국의 고민과 도전을 말해 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FBI는 독일·일본의 간첩단을 소탕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에드거 후버 당시 국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노동조합·좌파 인사들을 감시하고 견제했다. 30년대 후반 ‘도청 자료를 판결의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적색 공포와 ‘매카시 선풍’이 휩쓸고 난 뒤 미국에선 FBI가 ‘빅브러더’ 같은 괴물로 변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FBI의 무능을 질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중국 위협론’이 미국을 휩쓸던 90년대 후반 미국계 중국인들은 FBI의 중점 감시 대상이었다. FBI는 99년 대만 출신의 과학자 리원허(李文和)를 핵 기술 유출 혐의로 체포했으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리원허는 2006년 미 정부와 언론들을 상대로 165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FBI 수사망의 허점을 말해준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보기관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잘 쓰면 병을 고치는 수술용 칼이 되지만 잘못 쓰면 흉기로 돌변하곤 한다. 특히 정보기관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타락할 때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스탈린과 국가보안위원회(KGB), 히틀러와 게슈타포(비밀경찰)가 반면교사다.

요즘 한국 사회에선 FBI나 CIA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와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외풍에 흔들리고 책임회피에 급급한 한국 경찰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반영한 것인지 모른다. FBI가 온갖 도전을 이겨 내고 진화하는 장면 속에서 한국 경찰의 미래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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