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CIA,프랑스 정보기관에 망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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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때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막바지 단계였던 93년 말.미국은 농수산물에 대한 정부보조금 폐지 조항등 주요안건마다 프랑스의 집요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었다.
자칫하면 UR협상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주(駐)프랑스 미 대사관에 CIA요원 5명을 투입,정보수집작전에 들어갔다.
극비공작요원중엔 미모의 여성 「마리」도 포함됐다.포섭대상은 프랑스 고위관리 「X」.그러나 마리는 X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CIA도 그런 관계를 눈치챘으나 공사(公私)가 분명한 그녀의 직업정신을 믿기로 했다.그러나 X는 프랑스 정보기관 프랑스국토보안국(DST)과 연결된 인물.DST는 X를 통해 CIA의 각종 산업스파이 활동까지 파악하게 됐고 결국 CI A의 첩보활동은 대실패로 끝났다-.
한편의 영화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미국.프랑스 양국간 첩보전으로 이들 CIA요원 5명은 지난해 5월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고말았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CIA요원들이 외교관으로 위장,금지된 첩보활동을 벌여 추방할 수밖에 없었다고만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까지도 당시의 추방조치는 93년 미국에서 기업기밀을 수집하던 프랑스 첩보원이 추방된데 대한 보복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14일 「파리지부가 첩보활동중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는 CIA 내부문건이 프랑스 언론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사건의 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DST는 당시 X와 마리의 접선 장면,CIA의 비용으로 프랑스 관리가 묵었던 호텔 영수 증 등을 증거물로 제시해 세계 최고 정보기관임을 자처하는 CIA를 당황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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