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이라크 사태 해결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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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미국이 이라크에서 맞고 있는 도전은 세 갈래다. 하나는 팔루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수니파의 무력항쟁, 둘은 알사드르의 과격 시아파의 저항, 셋은 6월 말 점령당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을 주체가 아직도 없는 것이다.

수니파의 항쟁을 진압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수니파에는 사담 후세인의 전제통치 아래서 온갖 특혜를 입었다는 도덕적 약점이 있고, 수적으로 열세여서 팔루자 포위작전만 성공적으로 끝내면 적어도 저항세력으로서의 수니파의 숨통은 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살해한 미국인 4명의 시신을 훼손한 만행은 수니파 소탕작전에 나선 미군의 살기(殺氣)를 자극하고 전의 (戰意)를 북돋웠다.

주권을 넘겨 줄 상대에 대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3일의 기자회견에서 유엔 특사 브라히미에게 임무를 슬쩍 떠넘겼다. 부시는 "주권을 인수받을 실체(Entity)를 브라히미가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주권 이양이 임박한 지금까지 상대의 윤곽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파행 중의 파행이다. 아마도 미국은 허둥지둥 유엔의 팔을 비틀어 임시정부를 급조할 것이다.

가장 어려운 도전이 과격 시아파 민병대와의 게릴라전이다. 그것은 이라크 전후처리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미국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말 잘 듣는 친미인사 위주로 과도 통치평의회를 구성하면서 다수파 이라크인들의 참여의 길을 차단했다. 미국의 그런 방침에 뜻이 꺾인 야심가의 한 사람이 알사드르다.

부시의 하수인 폴 브레머를 수반으로 하는 점령당국과 통치평의회는 두 가지 큰 원칙을 세워놓고 임시헌법을 만들었다. 하나는 이라크를 복수정당을 가진 민주적 연방제 공화국으로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인 통치 아래 잔인한 탄압을 받고 전쟁 중에는 미국에 아낌없이 협력한 쿠르드족에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한다는 것이었다.

임시헌법은 국회의석의 4분의 1을 여성의 몫으로 할당하고, 영구적인 헌법 초안에 대한 쿠르드족의 거부권을 허용했다. 쿠르드어를 아랍어와 함께 이라크의 공용어로 지정했다. 이슬람을 국교로 인정하면서도 모든 법률의 유일한 근거(法源)라고 하지 않고 근거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시아파에는 굴욕적이다.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당연히 포스트 후세인의 이라크에서 우세한 지위를 기대했다. 온건파 출신의 대아야툴라 시스타니도 이런 임시헌법을 기초로 하는 새 정부 구성에는 반대다. 그러나 그의 반대의 방법은 비폭력적이다. 시스타니의 비폭력 노선과 알사드르의 폭력노선은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부시는 필요하다면 이라크에 군대를 더 보낼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증파될 미군의 규모는 1만명에서 2만명쯤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 정도면 수니파와 시아파를 동시에 상대하는 두개의 전선에서 당분간은 군사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항쟁이 베트남식으로 전국적인 규모로 장기화하면 그렇게 간단히 끝날 게릴라전이 아닐 것이다. 미군의 증파 움직임에 알사드르는 수니파와의 공동전선 제의로 응수했다.

알사드르를 순교자로 만들면 이라크는 제2의 베트남이 된다는 것이 미국의 많은 전문가와 유럽의 대부분 전문가의 걱정이다. 시스타니 진영과 무비판적인 친미로 낙인 찍혀 이라크 안에서 고립된 통치평의회 위원들이 알사드르와 점령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상을 건의했다. 그들의 중재 노력이 열매를 맺을 조짐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미군의 대규모 증파가 없는 한 무력으로 무장저항세력을 소탕할 수는 없다. 미국은 알사드르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대화하면서 사태안정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통치평의회의 부패한 친미인사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라크군 창설의 시기를 앞당기고, 이라크의 현실에 맞는 헌법을 만들 문호도 열어 둬야 한다. 이 정도의 양보 없이 체질이 다른 이라크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장기(臟器)를 이식할 수는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