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뉴욕합리'와 '서울합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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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들어 최고기록을 잇따라 경신하며 위로 위로 줄달음질치던 뉴욕증시가 지난주말 크게 휘청거렸다.하룻새 3% 남짓한 주가하락이라면 상.하한 제한이 없는 뉴욕증시에서도 이례적으로 큰 하락폭이다.물론 뉴욕증시의 주가하락에는 그럴만한 이유 가 있었다.
2월중 미국의 실업률이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따라서 금리인하 가능성이 현저히 줄었다는 판단이 이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판단-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선진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경제문제는 고용과 물가다.최근 수년새 물가가 2%대의 안정세를 보여온 미국에서는 고용확대가 최대 관심사가 돼왔다.특히 작년 4.4분기 이후 경기둔화에 따른실업증가로 경기부양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됐다.
경기부양의 두 축은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다.그러나 재정적자 해소가 정치문제화돼 있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현실적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보수적인 중앙은행(FRB)이 금리인하에 나서려면 물가여건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앞서 말했듯 인플레 재연에 대한우려는 크지 않다.따라서 금리인하는 필요성에서나,기술적으로나 안성맞춤의 정책카드다.그런데 주가와 금리는 대체로 역(逆)상관관계에 있다.금리가 떨어지면 주가는 오른다.따라서 이렇듯 성숙한 금리인하의 여건을 배경으로 주가 가 뛴 것은 당연한 상황전개였던 셈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바로 이같은 시나리오의 출발점 격이었던고용악화란 상황이 새로운 통계발표로 인해 희석돼버린 것이다.실업률이 낮아졌다면 경기부양의 필요성은 줄었고,금리인하 가능성 또한 그만큼 낮아졌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그 러니 금리인하를 내다보고 올랐던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할밖에.「합리적 기대」의 전형이다.
지난 주말 서울증시는 오랜만에 급등세를 보였다.올들어 계속 곤두박질친 주가를 생각하면 성에 찰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증시의 주가를 갑작스레 끌어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경기상황의 호전을 알려주는 무슨 화끈한 통계가 발표된 것도,또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금리인하조치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팽배한 것도 아니었다.하기는 실세금리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또는 1월중 생산활동 지표가 예상외로 좋았다는 발표에도고개를 치켜들지 못했던 주가가 그만한 일에 꿈쩍했을 것같지도 않다. 서울증시도 다른 나라 증시와 마찬가지로 돈에 눈밝다는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이들이라고 분석력.판단력이 없을리 없다.주가가 오를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지난주말 주가상승의 배경에도 정부의 증시안정대책 발표설이라는 분명 한 이유가 있었다.주가가 이렇듯 떨어지는데,게다가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정부가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른바 「증시안정」이란 이름아래 주가 자체를 「관리대상」으로삼고 부양과 진정을 반복해온 우리 정부의 정책패턴은 해외에서도널리 알려져있는 터인데 서울증시 투자자들이 이를 모른다면 한마디로 자격미달이다.
그러니 투자자들이 주가하락-주가부양-주가상승의 단세포적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은 서울증시에선 지극히 「합리적 기대」다.
그러나 합리도 합리 나름이다.정부의 「주가 관리」가 투자를 위한 합리적 기대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증시는 하나의희화(戱畵)다.
서울 증시도 이젠 40년 역사다.증시다운 증시를 볼 때도 됐다.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가를 관리하겠다는 발상을 미련없이버렸음을,정부의 주가 관리가 더 이상 합리적 기대의 전제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박태욱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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