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연 매달아 꿈같은 하늘 항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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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스카이 세일’(하늘 항해)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연을 달고 연료와 이산화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첨단 화물선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였다.

17일 울산 온산항에 들어와 4일간 머물다 21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로 떠난 독일 벨루가해운 소속의 9821t급 화물선 벨루가 스카이세일즈호.

뱃머리에 160㎡ 크기의 패러글라이더처럼 생긴 연을 매달아 100~300m 상공에 띄우면 연이 바람의 힘을 받아 배를 끌고 가도록 고안된 게 특징이다.


선장 하이저 하이너(62)는 “연 덕분에 연간 20% 정도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며 “조만간 벨루가해운 소속 화물선 62척 모두에 이런 연을 설치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8일오후 베루가해운의 국내 대리점인 헤비리프트코리아의 주선으로 온산항에 정박중인 벨루가 스카이세일즈호에서 하이너 선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연을 장착한 효과는.

“7개월 여 동안 운행해 본 결과 하루평균 1000달러 이상의 연료(벙커C유) 비용와 3t의 이산화탄소 발생량 감축 효과가 있었다.”

-구체적인 운항 결과는.

“5~6월 스페인의 사군토에서 파나마까지 6180㎞를 운항했는데 3만5000만달러(3560만원) 가량 절감됐다. 스카이세일(연) 시스템은 고유가 시대, 이산화탄소 절감시대에 해운업계가 찾은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확신한다.”

-연을 어떻게 작동하나.

“선수(船首)에 있는 20m 높이의 철봉에 폴리에틸렌 로프로 묶은 연을 100~300m 상공에 띄우면 연이 배를 끌고 가는 방식이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3000마력쯤의 추진력이 나온다. 지금은 연 제작회사인 스카이세일즈사의 직원 2명이 승선해 조종하고 있다. 조만간 컴퓨터 제어방식으로 자동조정할 예정이다.”

-연은 풍향에 상관없이 가동할 수 있나.

“풍향이 배의 진행 방향에서 좌우 25도 각도 이내로 불 때만 가능하다. 지난해말 함부르크항에서 진수식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8만3700㎞를 운항했는데 연을 이용한 구간은 30%쯤이었다.”

-연을 가동할 때 배의 속도는 어떻게 되나.

“속도는 15노트(시속27.8㎞) 정도로 장착하지 않았을 때와 같다. 다만 연이 3000마력의 힘으로 배를 끌어주는 만큼 엔진은 5600마력의 힘을 내야하던 것을 2600마력만 내도 되고 그만큼 연료가 절감되는 것이다.”

-연을 띄운 상태의 사진을 찍고싶다.

“태풍 영향으로 바람이 강한데다 정박중이어서 곤란하다. 선수 갑판아래 보관함에 있는 상태로 밖에 보여줄 수 없어 유감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온산항으로 들어올 때도 풍향이 맞지 않아 펴지 못했고, 출항할 때도 일본 요코하마항까지는 연을 펴지 못할 것같다. 요코하마에서 파나마로 가는 태평양에서 가동이 예정돼 있다.”

-이런 연을 장착한 배는 몇척이나 되나.

“상업 운항 중인 선박은 이 배와 베셀즈해운(독일)의 화물선 ‘마이클 A호’ 등 세계적으로 2척뿐이고 운항기간도 7개월째에 불과하다.”

-연 시스템이 등장한 의미는.

“바람의 힘으로 선박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1940년대 증기·내연 엔진이 보편화되면서 사라졌던 돛단배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유가·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맞아 상업 운항 역사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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