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ASEM과 汎아시아 관통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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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번 태국 방콕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매우 중요한역사적 회의로 평가될 것 같다.
그동안 전세계의 지역마다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동남아국가연합(ASEAN)등의 지역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요즘 와서 EU와 NAFTA가 만나 대서양자유경제권이 형성되려 하고 있으며, 아시아제국과미국.호주등이 만나 APEC이 이미 형성되었고,이번 아시아 제국과 EU가 만나 방콕 ASEM이 개최된 것이다.
매우 흥미있는 것은 세계경제는 나라와 나라가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측면 못지 않게 지역공동체와 지역공동체 혹은 블록과 블록이 만나면서 이뤄지는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이다.지금 한국이 영국과 만난 것은 실은 단독국가 영국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EU라는 집단의 일원인 영국을 만나는 것이다.따라서 집단적 배경 없는 단독국가는 세계무대 어느 곳에 가도 외톨이가 되기 일쑤다. 그동안 ASEAN은 APEC내에서 미국과 주도권다툼을 계속해 왔다.미.중.일 삼각관계를 역이용하면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총리의 이니셔티브로,미국을 배제한 동아시아경제회의(EAEC)와아시아자유무역지대(AFTA)를 끈기있게 추진해 왔고,미국의 핵정책에 대항해 ASEAN집단안보체제와 동남아비핵지대화를 선언했다.그리고 이번에 싱가포르의 주창으로 ASEAN이 EU를 끌어들여 방콕ASEM을 개최하고 한국.중국.일본을 불러들임으로써 전후(戰後) 처음으로 미국 참여 없 는 범세계적 회의체가 출범한 것이다.적어도 아시아가 미.중.일 주도가 아니라 ASEAN주도로 움직이는 엄청난 드라마를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이번 방콕ASEM은 상대적으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개별국가적고독을 노출시켰다.따라서 상대적으로 동북아의 지역공동체적 협력을 촉진하는 결과가 된 것 같다.그리고 중.일간의 경제 구도를생각하면 동북아협력의 이니셔티브는 한국이 쥐어 야 할 것 같다. 이번 방콕ASEM에서 범아시아관통철도(Trans-AsianRailway)를 건설하고 그것을 범유럽철도와 연결시키기로 한것은 매우 흥미깊은 구상이다.방법적으로 여러가지 난점이 있겠지만 동아시아가 실은 지리적.문화적.경제적으로 상 호결합관계가 미약하므로 범아시아철도 건설은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더구나 그것이 동남아와 동북아를연결하면서 남북한 연결을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그것이 한.일간 남해해저터 널 건설로 이어질 가능성도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철도는 재래철도가 아닌 고속철도 제안도 있고,아시아고속도로 건설 구상도 나와 있다.이것은 아시아정보하이웨이 구상과 함께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범아시아철도망 구상은 말레이시아측에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기본구상 단계에서부터 참여하 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필자는 이미 동아시아판(版) 신(新)마셜플랜을 제안한 바 있다.일본의 전후 보상기금과 아시아의 군축 자금으로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기 위한 기본적이고 중점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서울ASEM 때는 ASEM체제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한국은 그것을 촉진하면서 ASEM사무국의 서울 유치를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한.EU간의 인권.기술협력을 강화해미국의 ASEM에 대한 압력을 역으로 살려 아시 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친미적인 한국이 중계역할을 해야 한다.유럽과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한 한국민주주의가 동북아경제협력권을 배경으로 ASEM사무국을 유치하게 되면 한국은 아시아와 EU.미국.러시아를 매개하는 세계적 조정국가로 비약할 수 있을 것이다.세계가 서울에서 만나 21세기 신질서의 드라마를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가 크다.
김영호 경북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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