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오바마 ‘대통령처럼’ 순방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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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右)가 2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군 기지 캠프 에거스를 방문해 아서 콜먼 원사와 악수하고 있다. 오바마는 대선을 석 달여 앞두고 아프간을 시작으로 이라크·이스라엘 등 중동과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을 순방한다. [카불 AP=연합뉴스]

◇미 언론 총출동=오바마는 이번 순방에 앞서 여러 차례 외교적 실수를 해 망신을 당했다. 그는 이번에 독일을 방문하면 탈냉전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에서 연설할 계획이었다.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연설해 큰 반향을 얻은 점을 의식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 “대통령도 아닌 대선 후보가 남의 나라 기념물 앞에서 유세성 연설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포기해야 했다. 지난달 초에는 “예루살렘은 분할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슬람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그러자 급히 “예루살렘의 미래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협상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이번 순방에는 ABC의 찰리 깁슨, 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 CBS의 케이티 큐릭 등 방송 3사의 간판 앵커들을 비롯한 취재진 200여 명이 동행 취재해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유보다 훨씬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매케인이 지난 4개월 동안 세 차례나 해외 순방을 했을 때는 방송사 앵커 한 명 동행하지 않는 등 언론이 무관심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는 오바마의 인기가 높은 점도 있지만, 그의 사소한 말실수가 대형 설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대변인 로버트 깁스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순방은 유세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동맹국 친구들의 말을 들으러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원에서 외교통으로 잔뼈가 굵은 척 헤이글(공화), 잭 리드 의원(민주)이 순방에 동행하는 것도 ‘유세 아닌 초당적 의원 외교’임을 부각하려는 전략이다. 오바마도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말하기보다는 들으러 왔다”며 말을 아꼈다.

◇이라크보다 아프간이 중요=오바마가 첫 번째 방문지로 아프가니스탄을 택한 것은 매케인과의 차별성을 노린 것이다.

오바마는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심 전선은 아프간이라고 강조해 왔다. 아프간에선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미군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에 대한 공격이 40% 늘어났으며 지난달엔 이라크와 같은 사망자(28명)가 발생했다. 오바마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14만여 명 가운데 일부를 줄여 3만6000명이 있는 아프간에 보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아프간 도착 직후 오바마는 “미군의 사기는 높지만 상황은 비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시에 미국 지도자가 전황을 배우러 간다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이날부터 오바마의 외교 경험 부족을 부각하는 TV 광고를 개시하며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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