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소비가 빛나는 지구에 상처 입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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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34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원주민 노인의 환영 인사를 받은 뒤 그를 껴안고 있다. 시드니 AP=연합뉴스

친애하는 젊은이 여러분.

교황 베네틱토 16세 ‘청년의 날’ 연설

멋진 시드니 항구에서 호주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인사를 나누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우선 환영 인사를 해 준 원주민 노인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과거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과 불의를 알고 있으며, 지금은 치유와 희망이 작동하고 있고, 이것이 모든 호주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비행 시간을 다소 걱정스러운 기분으로 보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지중해의 광채, 북아프리카 사막의 장엄함, 아시아의 울창한 산림, 태평양의 광대함, 일출과 일몰을 맞이하는 수평선, 호주의 빛나는 자연미까지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심오한 외경심을 일깨웁니다. 성경 속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어렴풋이 떠올릴 만합니다. 빛과 어둠, 태양과 달, 물, 땅, 생물까지 하느님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면 누구라도 창조주의 위엄을 찬미한 시편의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비록 하늘에선 잘 보이지 않아도 땅에는 더 많은 것이 존재합니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남자와 여자도 그렇지요. 창조의 경이로움 가운데 있는 건 바로 당신과 저이고, 인류라는 가족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과 경건함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뭔가요. 내키진 않더라도 우리는 지구 표면에 상처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폐해지는 산림, 탕진되는 광물과 바다 자원이 그 상처입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소비를 떠받치느라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점점 높아지는 바닷물 때문에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섬나라에서 온 사람이 있을 겁니다. 어떤 이들은 황량한 가뭄으로 신음하는 나라에서 왔을 겁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물이 때로는 적대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얘기입니다. 훌륭한 창조물이 왜 이리 위협적으로 변했을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인류가 성취한 비범한 업적과 마주칩니다. 첨단 의술과 기술부터 창조적인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삶의 질을 높이고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풍부한 기회를 기꺼이 활용하고자 합니다. 어떤 이는 학문·스포츠·음악·무용·드라마 등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다른 이는 사회정의와 윤리에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으며, 사회봉사에 관심 있는 이도 많습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 어린이의 행동이나 어른의 관용에서 감지할 수 있듯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에 내재한 선(善)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곤 이런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가 있는 건 자연뿐이 아니라고요.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습관, 즉 사회적 환경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표식이지요.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적대적이고 위험한 것들과 마주칩니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심해지는 폭력성과 성적 타락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런 것들은 TV나 인터넷에서 흥밋거리로 취급됩니다. 저는 반문해 봅니다. 폭력이나 성적 착취의 피해 당사자와 얼굴을 마주한 채 이런 비극이 단지 오락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절대 진리는 없다는 관념도 해악을 부채질합니다. 무차별하게 실용적인 잣대로만 가치를 재는 상대주의는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무엇이 선이고 진실인지 고려하지 않은 경험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지 못하며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혼란과 절망을 부릅니다.

젊은이 여러분. 인생은 우연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정해진 질서가 있지요. 인생은 우연한 사건이나 경험의 연속체가 아니며,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찾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하고 자유를 행사하는 것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을 단지 하나의 소비자로만 보는 획일적인 시장에 혹해 바보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 시장에서는 주관적인 경험이 진리를 대체합니다.

오늘날 신은 방관자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종교와 믿음은 개인에겐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공공이익을 위해선 배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속주의는 인생과 사회를 설명할 때 창조주는 고려치 않습니다. 스스로 중립적이고 공평무사하며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의 존재가 지워지면 자연의 질서와 목적, 선(善)을 판별하는 능력이 시들해집니다. 인간이 자랑했던 재주는 얼마 못 가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착취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비폭력과 지속 가능한 개발, 정의와 평화, 환경보전은 인류를 위해 극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탐욕과 착취와 잘못된 약속이 초래한 고통으로 지쳐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사랑이 지속되고 재능이 공유되며 화합이 이뤄지는 곳을 열망합니다. 여러분이 시드니에서 세상 곳곳에 전할 메시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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