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장 뤽 엔니그 著 "엉덩이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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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엉덩이에도 역사가 담겨 있다면 황당하지 않을까.하지만 최근 번역 출간된 장 뤽 엔니그의 『엉덩이의 역사』(임헌 옮김.동심원 刊)는 인간문명이 바로 엉덩이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려 버린다.
엔니그가 프랑스 유력일간지 리베라시옹의 문화부장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 책의 내용이 만만찮음을 짐작하게 한다.엉덩이에 대한인식의 변화를 짚으면서도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인 에로티시즘도 잊지 않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 엉덩이의 탄생은 두 발로 걸으면서 손이 해방되던 시점과 일치한다.이때부터 두개골이 척추 위에 얹히는 직립자세로 바뀌면서 두뇌가 급속도로 발달하게 되었으니 엉덩이의출현을 문명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겠다.인류학자 이브 코팽은 그 시기를 3백만~4백만년전으로 파악한다.현재 이 지구상에는 영장류가 1백93종에 이르지만 반구형 엉덩이는 인간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엉덩이가 생겨난 후 비교적 초창기였던 선사시대의 동굴에 그려진 여인의 엉덩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풍만한 이유는 무엇일까.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와 러시아 코치엔키 등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조각에 등장하는 여자 엉덩이의 대부 분은 「거대한」 피라미드형이거나 절구통형이다.이같은 의문에 대해 저자는동물생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의 주장을 빌려 그 당시 인간들도모든 동물들처럼 뒤로 짝을 지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펼친다.여자는 엉덩이로 섹스의 신호를 보냈고,따 라서 엉덩이가 풍만할수록더욱 매력적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한다.그러다 어느때부턴가 엉덩이가 거추장스럽게 받아들여짐에 따라 인간의 성교는 정면 체위로바뀌었고 이때부터 엉덩이가 지금처럼 반원형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 책을 보면 엉덩이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는 서구 문화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16세기 이후부터 드가.보나르.쿠르베.르누아르.세잔.루벤스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여인들의 엉덩이를 화폭에 담았다.1910년대까지 화가들에게 잡힌 엉덩이는 대부분 목욕하는 엉덩이였다.이때까지 엉덩이는 주로 미적 대상으로 이야기되었다.그후부터 웬일인지 엉덩이 그림의 배경은 침실로 바뀌어 버렸고 엉덩이는 주로 음담패설의 대상이 됐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불붙었던 남색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엉덩이 숭배논쟁」으로도 불렸다.사디즘의 어원이 된 프랑스 소설가사드 후작을 비롯,당시 남색을 즐기던 사람들 사이에는 엉덩이 숭배가 거의 병적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된 엉덩이는 주로 여성의 것인데 그렇다면 남자들의 엉덩이는 어떤 모습이 이상적일까.그 옛날 한때 남자들은 엉덩이의 볼륨이 작아야 성기의 볼륨이 크다는 속설 때문에 엉덩이가 발달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 다.그러나 92년의 한 통계에서는 여자들도 남자의 엉덩이와 눈에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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