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지방자치제도 확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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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시의회 김귀환 의장이 15일 구속됐다. 의장 선거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시의원 30명에게 100여 만원씩을 제공한 혐의다. 김 의장에게 금품을 받은 시의원들까지 사법처리가 예상되는 스캔들인 것이다.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 18년 역사에서 거의 최악의 비리 사건인 셈이다. 다른 지역 지방의회의 문제점들도 ‘꾸준하게’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20년 전, 지방자치제도 도입을 논의하면서 우려했던 문제들이 곪아있다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의원 유급제는 2006년 도입됐다.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해 보좌관도 1~2명 둘 수 있도록 했다. 의정활동비도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시의원은 연간 120일의 의정활동 일수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하루 약 60만원을 받는 고소득자다. 250일 업무 일수를 기준으로 대통령의 보수보다도 많다. 지방의원들은 조례 제정권과 예산안 심사권으로 행정기관을 감시·견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의원들의 자질이 큰 문제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이다. 지방의원 가운데 자영업자나 건설업자 출신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해관계에 얽힐 가능성이 높고, 시각 자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당공천제도 역시 신중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지방의원은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이 공천을 좌우한다. 지역 국회의원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공천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이익이나 대표성의 반영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원이 지역 국회의원과 코드를 맞추다 보니 정책보다는 인간관계로 엮이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지나친 정당의 개입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히 106명의 의원 중 100명이 한나라당 소속인 서울시의회의 경우 일개 정당의 독식으로 스스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시의원의 역할과 활동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 서울시가 조례나 예산권을 쥐고 있는 시의원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도 있다. 건전한 견제 장치가 없다는 현실이 건강한 지방자치제도 유지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적절한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풀뿌리 자치제도가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다.

건강한 지방자치제도 확립을 위해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해 본다.

첫째, 주민·의회·지자체 간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역주민에 의한 의회해산 또는 의원 해직청구권을 보장하고 지방의회의 단체장 불신임 의결권이 확보돼야 한다. 동시에 단체장에게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비례대표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지역의 다양성을 대표할 수 있는 직능대표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지역 의원의 10%인 비례대표의원 비율을 20~30% 수준으로 높여 여성·노동계, 그 밖에 각종 시민단체의 직능대표성을 확대하면 전문성과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보수 조정이 필요하다. 완전 유급화보다는 의정활동에 소요되는 실비용 제공 측면에서 최소한의 보수 명예직으로 의정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순환보직 공무원보다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공채해 의회 직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정부가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특히 주민의 관심이 중요하다. 지방의원을 뽑는 일이나, 평소 한 달에 수 백만원씩 받는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에는 무관심하다가 비리가 터질 때에만 관심을 갖는 행태는 선출자인 주민들의 책임있는 행동이 아니다. 주민이 낸 막대한 세금을 주무르는 지방의회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지방자체제도에 대한 가장 효과적 견제가 될 수 있다.

김종호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