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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M&A … 게임업계 생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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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게임업계는 요즘 “자고 나면 인수합병(M&A)”이라는 유행어가 퍼져 있다. 기업 간 ‘몸집 불리기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게임을 하나 개발하는 데 수백억원이 드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경영하려면 한두 번 실패해도 부도가 나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커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 초 게임업체인 넥슨이 게임 스튜디오인 네오플을 인수했다. 넥슨은 이를 통해 월 매출 50억원에 이르는 인기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확보, 연매출만 3500억원이 넘게 됐다. 엔씨소프트와 NHN의 게임포털인 한게임을 제치고 게임업계 선두를 노릴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게임은 지난해 매출 3556억원을, 엔씨소프트는 3296억원이었다.

NHN도 지난달 자회사 NHN게임스를 통해 개발사인 웹젠의 지분 10.52%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현재 경영권 인수를 놓고 협의 중이다. 드래곤플라이도 콘솔게임 개발사인 판타그램을 인수했다. 5월에는 ‘오디션’의 개발사 T3가 매출액 규모로 두 배가 넘는 중견 게임업체 한빛소프트를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게임업계에서는 “한국 시장은 포화상태라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대형 업체들의 돈놀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합집산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상황은 해외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게임사인 EA에 밀려 만년 2위였던 미국 액티비전은 8일 주주총회에서 프랑스 비밴디게임스와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비밴디는 워크래프트·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등을 잇따라 히트시킨 미국의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의 모기업이다. 이번 합병으로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연매출 4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게임업체가 됐다. 미국 EA도 선두 탈환을 위해 범죄게임 ‘그랜드세프트오토 4(GTA 4)’ 개발사인 테이크투를 2조원에 사겠다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했다.

게임업계의 덩치 불리기는 대작 온라인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300억~400억원이 들 정도로 부담이 커지면서 촉발됐다. 특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360’ 같은 비디오 게임기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PC게임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한 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2년 동안 많은 돈을 투입한 게임이 인기를 끌지 못하면 바로 회사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리자드에서 디아블로 시리즈를 개발을 주도했던 거물급 개발자 빌 로퍼가 만든 미국의 게임 개발사 플래그십스튜디오가 최근 문을 닫았다. 올 들어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게임 ‘헬게이트: 런던’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사인 한빛소프트가 T3에 팔린 것도 헬게이트의 실패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권준모 넥슨 대표는 “발매 1주일 만에 5000억원어치를 판 ‘GTA 4’ 등 초히트작이 나오는 반면 중견 개발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도 세계적인 유통 인프라가 있는 만큼 좋은 개발사만 있다면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기·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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