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선거 중앙당 수억씩 지원 혼탁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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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깨끗한 선거가 위협받고 있다.선거법에 규정된 선거비용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거나,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후보가 매우 드물다.공명선거를 위해 만든 통합선거법이 사문화(死文化)될 위기에 처한것이다.정치개혁도 공염불이 되게됐다.이번 4.1 1총선은 서기2000년을 이끌어갈 정치주역을 결정하는 선거다.이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당선된다면 그만큼 미래에 그늘이 드리우게 된다.중앙일보는 이같은 상황인식아래 후보들의 의식조사와 함께 정당과 후보들의 돈 씀씀이 현장을 점검했다 .
『선거비용 제한액에서 2백분의 1을 초과하면 5년이하의 징역,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선거법 2백58조다.이번 총선에서 선거구당 법정선거비용이 8천만~9천만원 정도니 40만원 내지 50만원만 더 써도 「끝장」이란 말이다.
선거법을 어겨 벌금 1백만원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은 의원직도날아가고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고 공직을 맡을 수도 없다. 개정된 선거법 조항들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만큼 위협적이다. 중앙일보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진입해 출사표를던지는 여야의 30~40대후보 1백28명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했다.이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개혁성향의 후보들이기 때문에 추측이나 막연한 기대를 배제하고 직접 생각을 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들의 응답은 뜻밖에도 『이번 선거가 법정 선거비용 한도내에서 치러지지 못한다』였다.
일부 응답자들은 『상대후보들이 수십억원씩 뿌리고 다니는데 선거법만 믿고 앉아있다간 나만 손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신인들도 이미 기성정치판에 오염됐다는 얘기다.
먼저 신한국당의 경우 전체 응답자 34명중 56%인 19명이『나 역시 어렵다』고 응답했다.국민회의의 경우 응답자 30명중17명이,자민련은 27명중 16명,민주당의 경우 37명중 31명이 각각 『나는 할 수 있다』고 답해 야당의 경우 자신들은 결백하지만 여당후보가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남의 탓」을 대고 있다.
상대후보가 어떨 것같냐는 질문에 신한국당의 경우 응답자 34명중 28명이,국민회의의 경우 30명중 28명,자민련은 27명중 25명,민주당은 37명중 36명이 『선거비용보다 더 쓸 것』이라고 답했다.
여야를 가릴것 없이 이번 선거가 선거비용을 지키는 공명선거가될거라곤 전혀 보지 않는다.
도대체 개혁성향이라는 젊은 후보들이 왜 이럴까.
『지구당 개편대회에 이미 5천만원,홍보물 만드는데 3천만원이들었습니다.법적으로 인정된 유급선거원 비용에 경.조사비,각종 인건비등 눈만 뜨면 돈입니다.이런줄 알았으면 정치판에 안 들어왔을 겁니다.』수도권에서 신한국당으로 출마한 A후보 의 말이다. 경기에서 출마한 국민회의 B후보는 『선거기획회사라는 데서 이미지 홍보하고 팸플릿 만드는데만 2억원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만일 어떤 정치신인이 8천만원을 들고 정치판에 들어와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철저한 오산』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일단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정치행위란게 결국 돈」이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악조건속에서도 자신은 법정 선거비용 내에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후보가 79명이나 됐다.기명응답이어서 수치만으로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나마 고무적인 일이다.
중앙당의 선거자금 지원도 돈선거에 일조하고 있다.각당은 본격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백중지역에 3억~5억원씩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진다.그것만도 법정 선거비용을 훨씬 넘는다.그런 돈들은 결국 다 선거판으로 흘러나간다.
젊은 후보들의 응답을 종합하면 이번 선거 역시 「말보다는 돈」의 영향을 더 받을 수도 있다.
이제 금권선거를 막는 건 결국 유권자의 몫일 수 밖에 없게 됐다.
김종혁.고정애.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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